http://feminema.wordpress.com/2011/11/12/the-idea-of-wuthering-heights-2011
나와 <폭풍의 언덕>과의 관계는 꽤나 깊은 편이다.
중학교 때 처음 책을 읽은 뒤로 작품의 전반적인 부분에 깊이 빠져 고등학교 때는 이 책을 주제로 영어 회화 시간에 발표를 한 적도 있었고, 브라질 메탈 밴드 앙그라가 커버한 케이트 부시의 동명의 곡도 즐겨 들었으며, 류이치 사카모토가 지은 동명의 곡 역시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그들의 음악 색과 <폭풍의 언덕> 특유의 정서 사이에 거의 제로에 가까운 공집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어느 나라 출신의 동명의 이름을 가진 바이킹 메탈 밴드의 앨범까지 사다가 들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지 않는 편인 내가 여태까지 세 번은 완독한 것 같고, 미니홈피의 기록에 따르면 2009년 초에 1992년에 나온 원작 기반의 영화를 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한 지인이 "너는 왜 맨날 폭풍의 언덕 타령이냐."고 했던 게 확실히 허언은 아닌 것이다.
그러던 내가 아주 반가운 소식을 접했던 것은 2010년 가을.
영화 <타이탄>을 보다가 정말 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듯한 단역을 맡은 한 미모의 여성을 발견, 미니홈피에 화면을 올렸다가 선의의 댓글들 ㅡ 일본 AV 캡쳐 올리고 "이 배우 이름이 뭔가요?", "작품 품번 좀 알려주세요."와 같은 글을 올리는 것과 비교했을 때 굳이 선과 악의 구분이 필요한 것 같진 않지만 일단 이렇게 포장해두자 ㅡ 을 받은 적이 있다.
실명이 공개되어버린 그녀를 바로 구글링했는데, 차기 출연작 목록에 "Wuthering Heights"라는 반가운 문구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영미 문학에서 손꼽히는 히로인이라 평가 받는 캐서린 언쇼 역으로! 1
바로 그 때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플롯 자체야 내가 두말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소설을 기반으로 할 테니 괜찮을 것이 분명하고, 설사 소설의 영화화가 실패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얼굴의 여주인공을 볼 수 있는 불패 공식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본 영화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필패 공식과 플롯, 여주인공의 조화가 빚어내는 불패 공식의 팽팽한 모순 대결.
이성적으로는 무승부를 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나의 감성은 <폭풍의 언덕>이라는 작품 자체와, 카야 스코델라리오의 묘한 매력에 더 끌리는 것 같다.
아니, 끌리는 게 분명하다.
사실 영국 소설의 영화화라고 한다면 제인 오스틴의 영화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제인 오스틴>으로 스테레오타입이 박혀 있는 상태였어서 <폭풍의 언덕> 역시 저들과 비슷한 부류의 연출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 <폭풍의 언덕>은 전혀 다른 어프로치를 채택하여 시작부터 내 뒷통수를 우렁차게 후려쳤다.
영화는 거의 BBC 자연 다큐멘터리 수준의 퀄리티로 영국의 대자연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작게는 곤충부터 식물, 동물을 망라해 하늘과 대지까지 우리가 보통 "자연"이라고 부르는 그 추상적인 관념을 너무나도 디테일하고 감각적으로 묘사했다.
오히려 수단적인 면에서 너무 기교에 치중하느라, 그러니까 꼭 뮤직 비디오나 CF 같은 세련됨만을 추구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비슷한 화면에 식상해질 수준이었다.
바로 이 면에서 2011년작 <폭풍의 언덕>은 어느 정도의 비판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원작 소설의 내용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각각의 캐릭터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의 거대한 흐름이 어떤 양상을 띄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애초에 "폭풍의 언덕"이라는 이름을 단 영화를 볼 사람들이 저 두 어절의 문구에 조금의 배경 지식이 있고, 조금의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무턱대고 스토리 라인의 비효율적인 전달을 단점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기존의 이야기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부한 내러티브를 사용했더라면 주요 타겟의 관심을 놓치는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었을 터.
상황 외적인 음악과 대사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며 제3자적인 입장에서 보여주는 방식을 채용한 것이 결과적으로 훌륭한 전략이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배우들의 은은한 개성에서 찾을 수 있다.
감정 연기만 잘 살린다면 니콜 키드먼에 버금가는 배우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 카야 스코델라리오는 말할 것도 없고, 어린 히스클리프 역으로 나온 솔로몬 글레이브와 성장한 히스클리프 역으로 나온 제임스 호슨 ㅡ 둘 다 위키피디어 링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뿌리부터 오디션으로 뽑은 신인 배우들이 아닐까 한다 ㅡ 들도 히스클리프라는 만만치 않은 캐릭터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폭풍의 언덕>을 즐겁게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영화요, 감각을 극대화한 영화, 예컨대 영화 <위대한 유산>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역시나 추천할 수 있는 영화요, 정 안 되더라도 카야 스코델라리오의 청순한 목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 다시 추천할 수 있는 영화다.
역시 영화는, 여배우가 절반이다.
- 위키피디어를 둘러 보다가 발견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내용은, 영화 구상 초기 단계에 캐시 역으로 뽑혔던 것이 나탈리 포트만이라는 것이다. 나탈리 포트만의 캐시라, 생각만 해도 재밌는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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