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der

| 2012. 6. 19. 00:00

감상한 지 일주일도 넘은 영화에 대해서 평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기록으로나마 어떻게든 남겨두는 것이 이 블로그의 소임이므로, 인터넷에 떠도는 갖가지 문서를 참조해 글을 썼다.
그 말인 즉슨 감성적인 감상보다는 이성적인 감상이 더 주를 이루게 될 것이다.

2008년 영화였으니 이 때 윈슬렛의 나이 33세. http://filmdrunk.uproxx.com/2009/06/kate-winslet-wore-a-vag-wig

영화를 추천해줬던 사람은 내게 책까지 추천해줬고, 어느 순서로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는 것을 권한다는 답을 했다.
일주일도 더 전에 영화를 먼저 본 나의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면 그다지 책을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고  책을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문자의 영상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나에 대한 깊은 탐구심이 생길 때에 영화를 보면 될 것 같다.
다소 시큰둥한 말투라고 느껴진다면 옳게 짚었다.
소설이든 영화든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던 만큼 대중들의 평이 좋은 작품이라고 하나 내 취향과는 별로 안 맞기 때문이리라.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영화 플롯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이 관객들에게 이해하길 바란 내용 전부를 내가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의 이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한 기준에 미달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를 지켜보면서 들었던 첫 의문점이 바로 개연성이었다.
역시나 가장 큰 물음표가 떠 있는 부분은 두 남녀가 순식간에 ㅡ 거의 원나잇 수준의 진도가 아닌가! ㅡ 사랑에 빠지는 부분인데, 그 부분에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가식적인 이해 관계가 서려 있는 것이라고 오해를 할 정도로 사건과 사건을 이어주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애초에 그릇된 시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인지 그 다음부터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부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 첫 단추를 잘못 맞춘 자의 넋두리.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과는 조금 반대의 의미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는 어떤 부분에서 불필요하게 많은 정보를 노골적으로 제공하면서 관객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큰 감성 포인트 중 하나인 여자 주인공이 문맹이라는 점이 생각보다 빠른 시점에서 예상 가능하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
위의 예와는 반대로 이 경우는 내 촉이 평균 이상으로 정확했기 때문이라며 역시나 개인적인 신세 한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의 회상 장면 이전에 여자가 문맹이 아닐까 하는 예상, 최소한 어렴풋한 개념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 번 이 쪽으로 개념이 잡히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 영화는 예상대로의 전개라는 굴레에 갇혀버리게 되고, 원래대로라면 심한 굴곡을 가져야 할 감정 곡선이 아주 완만한 직선 형태를 띄게 된다.
자연히 이 부분에서도 영화가 내 취향과는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셋째로는 소설 자체에서 제기되었던 모랄리티의 문제다.
과연 이 소설, 또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만들졌다는 가정 ㅡ 예를 들어 <적과의 동침>의 스토리 라인을 비슷하게 따와 무고한 대한민국 문맹 여자와 북한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반대로 무고한 북한 문맹 여자와 대한민국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그 작품은 종북 빨갱이의 프로파간다 영화, 또는 수두 꼴통의 왜곡된 전쟁관을 그리는 영화 따위의 혹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요지는 이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나치의 '죽음의 행진'을 묵인하는 것이냐?
원작 작가가 네오 나치즘의 신봉자가 아닌 이상, 당연히 대답은 아니다가 될 것이다.
당연히 그가 의도했던 바는 한 여자의 고단한 삶과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압축된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측면에서 봤을 때 아무래도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는 관객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나마 케이트 윈슬렛의 열연마저 없었더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하게, 무관심하게 봤을 영화다.
작품을 보는 눈과 맡은 배역, 연기력 측면에서 "원로"라든지 "노장"이라든지 ㅡ '늙을 노(老)에 집착하는 이유가 그녀의 노안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꼭 이 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ㅡ 하는 단어가 제법 잘 어울리는 윈슬렛의 포스가 아니었더라면 정말 평범한 영화로 전락하기 십상이었을 듯.

"무언가 부족하다고 말하기에도 조금 모자란 영화" 정도의 한 문장으로 마무리를 짓고 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