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자꾸 글 쓰는 게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마감 전 날 저녁부터 시작해 새벽 5시까지 마무리하고 그냥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담당자에 보내버린 글이다.
새벽 5시까지 썼다는 것을 굳이 강조한 것은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당시 나의 집중력과 글 쓰기의 효율성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을 핑계 삼기 위해서다.
원래는 드립 투성이의 글을 쓰려고 했으나 애초에 어떤 주제가 정해진 상태에서, 그 글의 분위기를 따로 설정한 것에 맞춘다는 것은 아직 나의 능력에서는 불가능한 일로 생각된다.
그래도, 또는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시도해 봐야겠다.
아마 네이버에 보내는 마지막 글이 될 가능성이 큰데 만약 임기(?)가 끝나기 전에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면 그 때는 꼭 드립력 넘치는 리뷰를 보낼 생각이다.
네이버에서 수정해서 올린 것은 여기서 확인이 가능하다.
선정의 변 :
참 귀가 즐거운 한 주였다.
뜨거운 라이브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옐로우 몬스터즈의 미니 앨범, 데뷔 10년차를 향해 달려가는 페퍼톤스의 네 번째 정규 앨범, 최근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여성 싱어송라이팅 팀 제이레빗의 2집, 관록의 뮤지션 주찬권의 7년 만의 정규 앨범 등이 후보로 나와 이 주의 발견 자리를 두고 자웅을 겨루었다.
네 앨범 모두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은 가운데 옐로우 몬스터즈가 네티즌 선정위로부터 아주 높은 평점을 받아 이 주의 발견에 선정되었다.
점수가 정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7.9점이란 점수는 2012년 들어 두 번째로 높은 평점이다.
앨범 리뷰 : 위력적인 돌직구 감성 코어
마지막으로 이 정도의 비대중적인 장르의 앨범이 이 주의 발견으로 선정된 것이 언제인 지 훑어봤다.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갖춰야만 이처럼 하ㄹ-드한 앨범이 한 주간 대중성의 작은 상징이 될 수 있을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페이지를 하나 둘 넘기다가 작년 여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서야 원하던 앨범을 찾을 수 있었다.
극적인 전개를 위한 작위적인 설정이라고 의심하지 마시라.
공교롭게도, 내가 찾은 앨범은 옐로우 몬스터즈의 정규 2집 <Riot!>이었다.
관점에 따라 여러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들만한 펑크, 코어 밴드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난하겠다.
옐로우 몬스터즈의 전작들이 기본적으로 한국적 펑크의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면, 북미 투어를 마친 뒤 발매한 앨범 <We Eat Your Dog>은 장르적으로 좀 더 코어쪽의 접근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스래쉬 메탈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도 손색이 없을 ㅡ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트랙이라고 생각하는 ㅡ 앨범의 두 번째 트랙 'Caution:'은 이러한 변화의 조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치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조밀한 기타 리프, 속도감을 극대화하는 드럼과 베이스의 유니즌(unison), 완숙함이 한층 더해진 스크리밍까지, 도저히 금할 수 없는 중독성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빠른 반복 재생만이 살 길.
인트로 트랙 'WE Eat your dog'은 시작부터 청중의 고막을 사정 없이 후려친다.
제목이 전달하는 도발적이면서 도전적인 메시지에선 작사를 맡은 이용원식 스토리 텔링의 패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유려한 코러스의 멜로디 라인이 도입의 공격적인 기타 리프와 대비되며 묘한 균형감을 주는 'Anger'와 'K.O', 앨범을 통틀어 가장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No religion, No politics' 모두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렇다고 <We Eat Your Dog>이 대중성과 거리가 먼 "빡센" 곡 일색의 앨범인 것은 아니다.
올해 초 싱글로 발매되어 호평을 받았던 '눈사람'은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에서 아예 벗어나는, 락 냄새가 킁킁 나는 발라드다.
델리스파이스, 마이 앤트 메리의 감성이 잔잔하게 일어나 중후반부의 현악 세션과 감미롭게 얽힌다.
항상 꽉찬 사운드를 추구하던 옐로우 몬스터즈의 취향 역시 변함없이 드러나며 너를 좋아한다는 가벼운 주제를 마냥 가볍지만은 않게, 동시에 너무 신파적이지도 않게 풀어냈다.
"가장 대중적인" 트랙이라고 하는 ‘Ice cream love’는 또 어떤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좋아라 하는 드라마를 노골적으로 구사한 6분 12초짜리 트랙으로 한국적 정서의 반영이라는 밴드의 원래 취지와도 잘 맞아 들어가는 트랙이다.
디스토션 기타의 아르페지오로 시작해 정석적인 8비트로 전개, 팜 뮤트의 규칙적인 호흡 뒤에 자연스럽게 고조되는 분위기, 코러스와 새로운 버스(verse)의 대비를 수단으로 삼는 완급 조절, 4분경에서 시작하는 클라이막스와 화룡점정이 되는 스크리밍.
기승전결의 정석에 이보다 더 충실할 수는 없다.
제목과 가사 사이에 존재하는 초현실적 메타포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 결과도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Ice cream love'는 스크리밍이나 육중한 기타 톤, 더블 베이스 등 보통 시끄러움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일련의 모든 사운드가 대변하는 코어 음악의 장르적인 한계를 가볍게 뛰어 넘었다.
시끄러운 음악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청취자에게, 비록 표현 수단은 다를 지라도 등가의 감정 표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간단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널 사랑해"라는 아포리즘은 딱딱해서 침이 튈 것만 같은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로도, 말랑말랑하고 방정 맞은 느낌의 "워 아이↘ 니↗"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표현 방식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를 장르의 메시지적 한계성으로 비약시키려는 그 잘못된 편견을, 단 6분 만에 타파할 수 있는 위대한 트랙이다.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 쬐던 지난 5월 4일 금요일, 옐로우 몬스터즈의 단독 공연이 있었다.
리뷰어로 선정되기 이전에 이미 앨범에 대한 대단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리뷰어로 뽑히기까지 했고, 이들의 라이브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지라 당연히 공연을 보러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비현실적인 주머니 사정 탓에 그저 홍대 나들이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홍대 거리를 돌아다니는 내내 옐로우 몬스터즈의 감성으로 고막을 마사지했다.
5월의 따스한 봄날은,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 최고의 펑크, 코어 밴드로 자리 잡은 이들의 음악을 만나 의외로 긍정적인 시너지를 낸 것이 분명하다.
억울한 경제 상황에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말끔히 풀렸을 뿐만 아니라 무심코 길을 가다가 공짜 파스타 쿠폰까지 겟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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