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 Who Never Was

| 2013. 11. 25. 16:58

여태까지 들어보지 못했을 정도의 신선한, 그러나 단 하나뿐인 강력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구성해냈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면서도 놀랐던 점은 정말 그 흥미로운 소재, 몰입이 될 만한 주제 하나만 가지고도 시작부터 끝까지 나의 집중을 이끌어냈다는 것. 애초에 단조로운 직렬적 흐름에 진절머리를 내는 편인 내가 영화를 다 볼 때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ㅡ 는 사실 뻥이고 중간에 돌려놨던 빨래가 다 되는 바람에 잠시 빨래를 너는 시간을 가지긴 했다. 하지만 이는 물때 냄새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ㅡ 동시에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지도 않고 감상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것이 이 영화에 숨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뾰족한 답을 내릴 순 없었다. 다만 아래와 같은 심증들이 남았을 뿐.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이 영화가 인간에 대해 존재론적 의문을 던지는, 뭐 예를 들면 《고도를 기다리며》류의 철학 영화인 줄 알았다. 아무래도 정체불명의 인트로 장면과 의미가 불분명한 나래이션이 곁들여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의외로 뻔한 연합군 시각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도입부의 진지함을 모두 버리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 중의 하나다. 스토리의 진행이 가볍기는 하나 그렇다고 웃음 포인트을 억지로 넣는 것 같은 어설픈 시도를 하지 않았다. 관객 입장에서는 시종일관 진지함을 유지할 수는 있되 그 정도가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요, 너무 가벼운 것도 아니라 보기에 편하면서도 집중은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존재한 적 없는 사나이》는 따지고 보면 옛 상업 영화의 전형적인 계보를 잇고 있다. 뚜렷한 선악 구도와 주인공 부류들의 재기발랄함, 무작위적인 요인이 만들어낸 작위적인 결과들과 같은 의도된 장치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끌어져나오는 카타르시스 등 당시 상업 영화의 진부한 요소는 대부분 갖추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철저하게 실화를 바탕으로 둔 영화이기 때문인지 ㅡ 사실 이 작전이 실화라는 사실이 상당히 놀랍긴 하다 ㅡ 누가 보기에도 구라 같은 이야기는 없다. 조금 오버스러운 부분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극의 재미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보고 넘어갈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루시 셔우드 역을 열연(까지 할 만한 극적인 요소가 없긴 했지만)한 글로이아 그레이엄의 캐스팅이 화룡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태생적으로 외롭지만 유혹적인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이 배우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와 부재에 대한 극적인 반전을 표현하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이 배우의 영화를 좀 더 찾아볼 계획이다.

http://www.military-history.org/articles/war-on-film-the-man-who-never-was.htm

오랜만에 즐겁게 영화를 봤다. 그래서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