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유명한 장폴 사르트의 《말》이다. 워낙에 오랜 기간 띄엄띄엄 읽기도 했거니와 책의 내용 또한 난해한 편이라서 나의 "감상"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지 않다. 다만 그 누가 보기에도 천재적이며 조숙했던,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불우했다고도 할 수 있는 그의 과거를 보며, 나 또한 조숙한 유년기를 보내며 남들에게 표현하지 않은 정신적 부침을 겪었던 것이 분명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그 어떤 어린이가 저런 식의 사고를 하며 인생을 살아왔겠느냐는 의문이 든다면, 이 세계를 살다간 셀 수 없이 많은 삶 중 (절대적인 수치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맥락의 유년기를 보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물론 그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 뒤의 삶이 사르트르의 그것만큼이나 위대한 사람은 그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가 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말》은 저 지극히도 일상적인 의미를 가진 1음절의 단어가 풍기는 편안함 같은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비교적 앞 부분인 "읽기"는 말 그대로 읽을 만하다. 2부인 "쓰기"는 솔직히 말해 제대로 이해한 부분이라고는 별로 없는 느낌이다.
그래서 "얘야, 그러다가는 눈을 완전히 버리겠구나!" 하면서 어머니가 들어와 불을 켜 주었을 때는, 비겁한 안도감과 실망을 한꺼번에 느끼면서 일상적인 가정의 분위기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일부러 험상궂은 낯으로 벌떡 일어나 소리 치고 이리저리 뛰곤 하면서 어릿광대 짓을 해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어린애로 되돌아오고 나서도 나의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책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그것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왜 썼을까?
우리는 일찍이 우리 집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고프 가(街)에서도 그랬고 그 후 어머니가 재혼했을 때에도 그랬다. 그래도 모든 것을 빌릴 수 있었으니까 나는 그것이 괴롭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여전히 추상적인 존재였다. 이 세상의 재물은 그 소유자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반대로 내게는 그것이 내가 어떤 사람이 아닌가를 가리켜 보였다. 나의 존재는 단단하지도 한결같지도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한 일을 장차 계승할 자도 아니었고, 강철 생산에 필요한 자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나는 혼이 없는 존재였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시신(詩神)의 목걸이에 진주 한 알을 더 엮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모범적인 일생의 추억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며, 민중을 그들 자신 속에 깃든 악과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며, 장엄한 미사곡으로 인간들에게 하늘의 축복이 내리게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남들이 그것을 읽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나이가 지긋한 작가들은 누가 그들의 처녀작을 극구 칭찬해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칭찬을 가장 싫어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나라고 확신한다. 나의 가장 훌륭한 작품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이지만, 나는 은근히 그것을 곧 싫어할 채비를 한다. 만일 비평가들이 지금 그것을 악평한다면 아마도 기분이 상할 것이다. 그러나 6개월 후에는 나도 그들과 비슷한 견해를 갖게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들이 아무리 그 작품을 빈약하고 하찮은 것으로 판단한다 하더라도 그 작품 이전에 쓴 모든 작품보다는 높이 평가해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시간적 순서만 존중해 준다면 내 작품을 송두리째 낮게 평가해도 이의가 없다. 오직 그 순서만이 내일은 더 잘하고 모레는 그보다도 더욱더 잘할 것이며 마침내 걸작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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