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16 : It's been a long night in New York City

| 2012. 5. 31. 00:47

PES를 즐기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베를린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총 세 달에 달하는 동유럽 순회의 마지막 거주지였던 베를린에서, 돈도 체력도 거의 바닥이 나버린 나는 교환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던 친구의 기숙사에서 거의 하루 종일 GTA만 했더랬다.
그렇다고 무슨 대망의 엔딩을 봤던 것도 아니고 예전에 하다가 막혔던 비행기 면허 따는 부분에서 고질적인 컨트롤 문제로 그만 두었을 뿐이다.
재미 있는 것은 자기 랩탑에 있었음에도 GTA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내 친구가, 주구장창 게임만 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오히려 자신이 뽐뿌를 먹고는 기세를 몰아 엔딩까지 봤다는 것.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뉴욕의 밤을 이렇게 헛되이 날려버리다니 알찬 여행을 하고 오자고 다짐했던 나의 포부가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위 이야기는 실제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나와 내 친구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을 법한 상황이었다.
둘 다 처음으로 플레이한 PES 2012는 엄청난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드리블부터 패스, 슛까지 모든 컨트롤이 실제 축구와 상당히 비슷해져 아케이드적인 재미는 줄었지만 현실감만큼은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 최강이었다.
이러다가 밤새 게임만 하다가 가는 것이 아니냐는 진지하고 무서운 농담을 나누며 우리는 열심히 게임을 했다.

즐거움만 따지자면, 뉴욕에 도착해서 가장 좋았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비록 낄낄거리는 웃음이긴 했지만, 뉴욕에 도착해서 가장 행복하게 웃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한 대로, 기왕 뉴욕까지 왔는데 조이패드나 붙잡고 밤을 보낼 수는 없는 법.
무슨 일을 하며 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던 우리는 최종적으로 두 가지 안으로 선택을 좁혔다.
첫째는 그냥 동네 어귀에서 맥주나 먹고 들어오는 것.
둘째는 시내 클럽에 나가는 것.

클럽이나 나이트 가는 걸 굉장히 즐길 것 같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온 나는, 사실 살면서 클럽과 나이트를 가본 횟수를 다 따져봐도 한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반대로 보통 아무 일주일이나 놓고 술을 먹은 날을 세어보라고 하면 보통 한 손으로 겨우 셀 수 있을 정도거나 가끔은 한 손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술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나는 어디 근처에서 대충 맥주나 먹자는 주장을 펼쳤고, 원래 술 먹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친구는 클럽을 가자고 나를 이끌었다.

형님에게 자문을 구했다.
바로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한국에 들어가는 일정이라 우리와 불목을 같이 보낼 수 없던 형님은 그래도 기왕 뉴욕까지 왔는데 시내에 나가서 놀고 오는 게 좋지 않겠냐는 멘트를 던졌다.
끙끙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뭐 일단 밖에 나가서 생각해 보자며 친구를 밖으로 이끌었다.
택시를 탔다.

그리고 도착한 곳.

무슨 놈의 목요일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단 말이냐.

애초에 정해진 답을 놓고 뭘 그리 오래 고민했냐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름부터가 '서클'인 것이 코리안 클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인 위주의 공간이었다.
바깥에서 예약 잡아주는 사람부터 서빙하는 웨이터까지 대부분이 한국 사람 ㅡ 최소한 우리 말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서클은 목요일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테이지가 가득 찰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나와 같은 여행객이 거의 없다는 가정 하에, 이제 막 학기가 마치고 방학이 시작한 유학생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라 추정.
남녀 비율은 괜찮은 편이었고 시설도 썩 준수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갔던 ㅡ 2008년에서 2009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이었는데 2008년 말이었는지 2009년 초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ㅡ 클럽이 청담동에 있던 '서클'이었는데, 뉴욕 서클에는 거기서 봤던 원형 라운지가 없던 것이 약간의 에러.
워낙에 한국 사람들이 많다 보니 클럽 내에서는 여기가 미국인지 뉴욕인지 굳이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릴 정도로 친숙한 분위기였다.

분위기만 쓱 보고 빠지자는 입장 때의 계획과는 달리 기왕 간 김에 술이나 좀 제대로 먹고 오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아마 잭 다니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양주 큰 병을 놓고 너 한 잔, 나 한 잔 홀짝홀짝 술을 먹었다.

화장실에는 위압감 있는 흑형이 있었다.
처음에 갔을 때는 그냥 술 취한 사람이나 관리하는 역할인 줄 알았는데, 두 번 가니까 그에게 또 다른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화장실에 가면 기본적으로 보는 일을 마치고 손을 씻으려는데 아주 능숙하게 적당한 온도의 물을 틀어주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거품 비누를 쭉 짜려고 했는데 어느 새 대신 짜주는가 하면, 물기를 닦으려고 종이 타월을 찾는 그 순간 어느 새 방금 뽑은 빳빳한 타월을 손에 들려 주었다.
그제서야 세면대 중앙에 놓여진 팁 바구니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잔돈이 없었고 그렇게나 친절했던 그를 그저 외면하고 지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철저한_외면.jpg

술을 먹다보니 자연스레 옆에 앉은 사람들도 알게 되고 뭐 그렇게 되었다.
이 날 들었던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누군가 나보고 호빠에서 일한 적이 있지 않냐고 했던 것인데, 글쎄, 고영욱 닮았다는 소리 안 들은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인지 어쩐 건지, 기분이 나쁜 건지 안 나쁜 건지 오묘한 감정으로 웃었던 것 같다.

피곤한 듯, 안 피곤한 듯 여차저차 시간을 보냈다.
새벽 3시가 되자 갑자기 대격변이 일어났는데, 원래 뉴욕의 법이 그런 건지 모든 술을 다 치워야 한다며 웨이터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닌 것이 그 원인.
옆자리의 다른 술까지 함께 먹고 있던 우리에게 ㅡ 아직 원래 시켰던 잭 다니엘인가 뭔가는 다 먹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ㅡ 테이스터스 초이스 따위는 없었다.
무작정 입에다가 술을 털어 넣고는 급격하게 취해 클럽 마감 시각이었던 3시 반쯤에 헤롱헤롱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겨우 겨우 집으로는 무사 귀환에 성공했다.
여로에 술 기운까지 더해진 우리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고 다음 날 공항으로 떠나는 형님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계획되어 있었던 자유의 여신상 관광 따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낮까지 쿨쿨 잤다.
약 한 달여간 아무도 살지 않을 집이었기에 뒷정리를 할 것도 있고, 부탁 받은 일도 있고 해서 그렇게 오래 잘 수는 없었다.
피로함을 안고 떠날 준비를 했다.
물론 그 와중에 PES도 한 세 판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전 날의 감동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다.
아마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 때문이었겠지.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차피 나중에 가면 상하게 될 것이 분명한" 빵 몇 조각을 가지고 나왔다.
아침이고 점심이고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나중에 버스에서 먹을 심산으로 말이다.

모든 할 일을 마치고, 덜컹대는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있는 버스 터미널로 나갔다.
슬슬 뉴욕과 안녕할 시간이 오고 있었다.

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있던 뉴욕 타임즈 건물. 사실 뉴욕 타임즈 건물이라고 추정할 뿐이지 확신하지는 못한다.

필라델피아에서 봤던 터미널과 아주 흡사한 구조의 터미널이었다.
즉, 무슨 특별한 플랫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약간 한적한 도로를 빌려서 그냥 탑승장 정도로 쓰는 것.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라면 참 겪기 힘든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공간이 없다보니 자연스레 정해진 주차장이 없고, 정해진 주차장이 없으니 출발할 버스가 미리 대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버스가 있을 곳이 없으니까 출발 시각까지 맞춰 시외의 어딘가에서부터 버스가 도착하는 방식으로 운영이 되는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만약 시내 교통 상황이 안 좋으면 어딘가에서 오는 그 버스도 터미널에 늦게 도착하게 되고 자연스레 출발 시각이 연기된다는 것.

왼쪽에서 형광 조끼를 입고 일하는 흑형은 되게 작고 통통한 것이 꼭 무슨 고기 덩어리 같았다.

물론 버스 회사라는 것을 차리고 고객을 상대하며 그들의 돈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어느 정도까지는 시각을 지켜주긴 했지만 출발할 시각이 다 되었는데도 내가 탈 버스가 도착하지 않는 현상은 참 낯선 것이었다.

이번에는 뉴욕으로 오면서 탔던 볼트 버스가 아닌, 메가 버스(Mega Bus) 표를 끊었는데 위 사진에서 멀리 보이는 바로 저 버스를 타게 되었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고속 버스 주제에 무려 2층으로 되어 있고 복도 양쪽으로 좌석이 2열씩, 총 4열로 되어 있어 한번에 정말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나라에서 다니는 우등 버스는 고속 버스치고 안락감과 탑승 인원 사이에서 전자에 극대화되어 있는 형태인 것 같다.

버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느냐면,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 뒤로 있었던 이 줄의 사람들 대부분이 버스에 탔던 걸로 기억한다.

거의 바로 잠에 빠졌다.
뉴욕을 떠나면서 드는 감상 뭐 그런 거 다 없었고 진짜 제대로 숙면을 취했다.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버스는 물론 직행도 있겠지만 많은 버스들이 볼티모어를 거쳤다 가는 편이었다.
진짜 버스에 타자마자 거의 5분 내로 잠에 들고, 볼티모어에서 한 번 정차했을 때 잠깐 깼다가 바로 다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필라델피아를 떠나 뉴욕으로 가는 버스에서처럼 한국인 여자가 옆에 앉지도 않았고 나꼼수도 이미 다 들어버렸기 때문에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저 계속 바닥난 에너지를 보충하는 수밖에.

의도하지 않게 시작하긴 했지만 뉴욕 여행과 함께 했던 뉴욕 테마송 시리즈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 적당한 노래를 찾다가 바로 이 노래를 떠올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운 컨트리풍으로 진행되는 'Who says'는 분위기를 보나 가사를 보나 모든 형태의 여행과 비교적 잘 어울린다.
특히나 거의 3박이나 4박에 가깝게 느껴질 만큼 긴 긴 시간 ㅡ 그 중에서도 특히 긴 긴 밤 ㅡ 을 보냈던 나의 상황과 "It's been a long night in New York City."라는 후렴구가 참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뭐 "Rewrite my history"나 "Call up a girl", "Fake love for an hour or so" 등 각종 멘붕의 가사들이 잠재해 있으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미국을 떠나게 될 7월 말까지 최소한 한 번은 꼭 다시 시간을 내서 찾을 뉴욕과 나는 일단 이렇게 "잠시만 안녕"했다.
다소 싱거운 여행이라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진짜 관광은 모두 다음 방문으로 미루기로 했다.

밀리지 않고 4시간 가량을 주구장창 달려 DC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 무렵.
처음으로 제대로 된 버스 터미널에 내려 숨을 고르고 밖으로 나왔다.
물론 간사하게 와이파이를 잡아 페이스북에 체크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내 앞에는 또 한 번의 운명의 장난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 말도 안 되는 DC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로 이어진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천장을 가지고 있는 워싱턴의 버스 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