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18 : 걸어서 가는 워싱턴 D.C.

| 2012. 6. 2. 00:42

술을 먹은 지 12시간을 족히 넘기고 있었지만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숙취에 쩌든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미리 불러놨던 택시를 타고 미리 정해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친구 C ㅡ 대체 이 알파벳이 어디서 튀어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면 지난 포스트를 참고하시길 ㅡ 가 추천한 곳으로 자기도 두어번 가봤는데 맛이 상당히 괜찮다는 치킨집이었다.
근처에 별다른 음식점이 없었다는 것을 고려에 넣더라도, 저녁 시간이라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치킨을 뜯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맛은 괜찮은 편인가보다 했다.
치킨집 이름은 '엘 포요 리코(El Pollo Rico)'.
구글에서 바로바로 뜨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유명한 집인 것은 확실했다.

카운터에 줄을 서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주문을 하는지 지켜봤다.
주문은 웬만한 패스트푸드점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됐는데, 무엇이든 말만 하면 그 자리에서 뚝딱뚝딱 담아주는 것이 신기했다.
사람들의 숫자에 맞춰서 닭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어떻게 이 수요를 충족하는지 궁금했다.
내 앞의 줄이 조금 짧아지자 그 비밀이 풀렸다.

디아블로를 보는 듯한 느낌.

저렇게 거대한 기계에서 한 번에 거의 50마리가 넘는 닭이 노들노들 구워지고 있었다니.
워낙에 화력이 좋으니 아마 금방 금방 새 닭들을 구워낼 수 있을 구조였다.
게다가 저것과 똑같이 생긴 기계가 바로 옆에 한 대가 더 있었으니, 이 정도면 학교 급식을 서빙해도 너끈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체 이 작은 가게에서만 하루에 몇백 마리의 닭이 소비될 것인가 괜한 감상에 빠지기도 했지만 어느 새 내가 주문할 차례가 되어 그 주제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진 못했다.

그냥 다른 애들이 시키는 것과 똑같이 시켰다.
닭 반 마리에 감자 튀김, 콜 슬로, 소스 두 개, 그리고 이 집에서만 판다는 잉카 콜라라는 녀석까지.
닭은 1/4조각부터 쿼터 단위로 1마리까지 시킬 수가 있는데, 고객이 원하는 사이즈에 맞춰 즉석에서 닭을 잘라주는 시스템은 꽤 인상적인 것이었다.
만화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칼로 닭을 턱 내려쳐 주문한 크기로 조각을 낸다.
페루비안 치킨 집이라고 했는데 조리 법이 페루비안인지, 뭐 서빙 방식이 페루비안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후자가 맞다면 왠지 더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고작 1회용 포크와 나이프를 주길래 이것으로 무슨 놈의 닭을 먹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육질이 부드러워 주어진 도구만으로도 충분히 살을 잘 발라 먹을 수 있었다.

저기 건너 편에 보이는 잉카 콜라는 밀키스나 암바사 맛과 비슷했다.

고기 자체도 맛이 괜찮았지만 소스가 정말 엄청난 맛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시킨 소스는 하나의 녹색 소스 ㅡ 별로 맵지 않은 고추를 갈아 넣은 듯한 느낌 ㅡ 와 노란 소스 ㅡ 허니 머스타드 비슷 ㅡ 였는데, 치킨을 잘라 녹색 소스에 담갔다가 노란 소스에 담갔다가 우걱 우걱 먹고 동시에 콜 슬로 한 스푼, 감자 튀김 한 조각을 입에 넣어서 씹어대면 거의 최고였다.
고질적인 고기 + 기름기에 약한 위장에, 숙취가 부른 컨디션 난조까지 합쳐져서 내가 시킨 양을 전부 싹싹 긁어먹진 못했지만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음료수가 조금 모자라긴 했지만 더 갈증을 불러올 잉카 콜라는 일단 포기, 다른 데서 물을 사서 마시기로 하고 가게를 나섰다.

워싱턴에 도착한 지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내 관광 경험이 있는 친구 C가 우리를 리드했다.
설명에 따르면, 일단 우리가 발을 대고 서 있는 땅은 버지니아였다.
동쪽을 향해 계속 걸어 어떤 강을 건너면 거기부터가 워싱턴이었다.
거기까지 걸어서 갈 것인지, 택시를 타고 갈 것인지 물어봤다.
아무래도 택시를 타고 다니면 제대로 된 관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리 먼 거리가 아니면 걷자고 제안했고, 나머지는 별로 의견들이 없었기에 그냥 걷는 것으로 정해졌다.
인턴생 둘 ㅡ B와 C, 백수 하나 ㅡ A, 그리고 노숙자 한 명으로 구성된 코리안 파티는 뚜벅뚜벅 길을 걸어나갔다.

버지니아라는 이름이 주는 근거 없는 촌스러움 때문인지 동네는 전형적인 "교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지적해서 깨달았던 것은, 거리에서 흑인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미국에 와서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아무리 미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라는 허울 좋은 말로 표현되고는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융합은 정말 국지적인 부분에서만 일어날 뿐,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각기 다른 문화들은 단지 문자 그대로 섞여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우리 나라의 사정과 관련해 이러한 미국의 상황이 내게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컸다.

갑자기 별 포커스도 없는 사진이냐고 생각하면 섭섭한 일이다. 나는 전 세계를 통틀어 탬파베이 레이스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다. 수줍어서 비록 말은 걸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길을 가다가 하도 목이 말라서 CVS에 들어가 물을 사 마시기로 했다.
CVS는 컨비니언트 스토어(convenient store)의 약자로 우리 말로 하면 편의점, 일본어로 하면 콘비니 정도로 옮길 수 있는데 그것은 단순한 이름의 해석일 뿐 가게 안의 내용물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편의점과 비슷한 것은 아니다.
물론 점포들마다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의 편의점은 대개 약국과 한 몸을 이루고 있고 거의 대부분의 생활 필수품을 모두 파는, 김치맨인 나로서는 다소 이색적인 느낌의 공간이었다.
당연히 크기도 클 수밖에 없어서 모두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으로는 성 생활 용품과 종이로 된 카드 ㅡ 뭐 생일 축하나 그럴 때 쓰는 카드 말이다 ㅡ 같은 것도 팔았다.
왜 굳이 성 용품을 봤느냐고,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을 찾아다닌 것이 아니냐고 추궁할 여지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정말 우연히 포착했을 뿐이다.

가장 싸보이는 물을 골라 셀프 결제 시스템으로 사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물은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니었다.
살짝 지칠 정도로 걸으니까 드디어 그 다리가 보였다.

친절한 간판.

비록 사이즈가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도 큰 행정 구역의 경계를 걸어서 통과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내가 미국의 주 경계를 걸어서 통과한 순간이었다.
당연히 감격스럽고 뭐 이런 건 정말 하나도 없었고, 그냥 바로 다리를 건넜다.
왠지 이 쯤에서 네 명이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좀 부탁했다.

다리를 중심으로 오른 편에 펼쳐지는 광경은 꽤나 볼품 없었다. 오른쪽에서 1/3 정도에 해당하는 부분에 보이는 항구는 특히나 빈티지한 맛이 강했는데, 사실 그 지역은 밤에 워싱턴에서 가장 핫(hot)한 플레이스 중의 하나였다.

우리가 배경으로 찍었던 곳은 다리의 왼 편.
조지타운이라는 대학교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름을 듣는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내가 생각한 곳은 존스타운이라는 사실을 깨우쳤다.

미국 대학교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처음 들어 본 학교였지만 이래저래 꽤 괜찮은 학교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니까 바로 번화가 비슷한 곳으로 진입했다.
대학교 이름을 따서 그냥 존스타운, 아니지 조지타운(Georgetown)이라고 부르는 동네인데 워싱턴의 세 번화가 중 하나라고 친구 C가 알려주었다.
그냥 설렁설렁 둘러 보면서 길을 걸었다.
음식점은 별로 없었지만 옷 가게가 꽤나 많았다.

조지타운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것이 컵 케이크라는데 뭐 도저히 아래 줄을 보고는 먹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무슨 놈의 컵 케이크 주제에 저렇게 긴 줄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는 말이냐.
하나도 안 아쉬운 마음에 그냥 사진이나 찍었다.

뒤쪽이 페이드 아웃 되는 바람에 사람이 좀 적게 나온 편이다. 진짜 한 100명은 건물 밖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것 같다.

길을 가다가 보이는 어떤 바를 쓱 둘러봤는데 필라델피아와 보스턴의 플레이오프 7차전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자칭 열혈 필라델피아 팬인 친구 A와 그냥 이런 시즌에만 관심 있게 지켜 보는 친구 B와 나는 꽤나 오래 걸어오기도 했으니 괜찮으면 여기 근처에서 맥주나 한 잔 하면서 농구나 보자고 했다.

대충 조지타운의 거리는 이런 느낌이다. 건물들이 아기자기한 것이 운치 있었다.

무슨 스미스 어쩌구 하는 바에 들어갔다.
건물 안쪽으로는 전문 레스토랑인 것 같아 간단히 맥주나 먹기 위해 입구 쪽에 마련된 바에 둘러 앉았다.
저녁 8시가 다 되도록 남아 있는 술 기운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어차피 워싱턴 여행은 이것이 마지막이다 싶어 꿀꺽꿀꺽 잘도 먹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한산했던 바.

정말 졸렬하기 짝이 없는 경기였다.
양 팀 다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가득한데 의욕만 앞서니까 도무지 제대로 된 플레이가 나오질 않았다.
다행히 두 팀이 모두 병맛 섞인 플레이를 했기에 스코어만큼은 팽팽했다.

후반전이 시작할 무렵에 맥주를 한 잔 더 시켰다.
전반전에 시킨 이 바의 하우스 맥주는 향이 강했던 반면, 후반전에 시킨 밀러 라이트는 아주 가볍고 깔끔한 맛이었어서 궁합이 잘 맞았다.
동유럽 여행에서도 많은 맥주를 먹어봤지만, 옛날보다는 더 미각에 신경을 쓰는 편이 되어서인지 미국의 맥주들이 훨씬 더 다양하고 독특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미친 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 우리가 있었던 스미스 어쩌구 하는 바는 조지타운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끌벅적하기로 유명한 바였다.

이 피아노 맨도 사람들을 부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노래 실력은 썩 좋지 않았지만 피아노는 상당히 맛깔나게 쳤던 아저씨.

한 쪽에서는 피아노를 꽝꽝 치고 다른 쪽에서는 애들끼리 술 먹으면서 소리 지르고 또 이 쪽에서는 농구를 보면서 희비가 엇갈리고 뭐 완전 개판이었다.
아수라장 속에서도 농구 경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4쿼터 후반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결국 패하고 말았다.
식서스의 상당한 팬인 A를 위해 최후의 순간을 맞기 약 1분 전쯤에 가게에서 나왔다.

이제는 어디를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아까 봤던 강가 쪽으로 걸었다.
조지타운은 주 거리보다 양 옆으로 빠지는 골목길이 훨씬 더 볼 만한 것 같았다.
삼청동이나 가로수 길과 비슷하게 고급스럽거나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 뭐 옷 가게 같은 것들이 요소 요소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까 내가 허술하게 봤던 항구는, 밤이 되자 이 정도로 멋진 공간이 되었다.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강가에 정박한 요트에도 사람들은 넘쳐났는데, 제각기 무리를 지어 술을 먹거나 널부러져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꼭 미국 하이틴 영화의 전형적인 잘 나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가 듀퐁 서클(Dupont circle)에 가자는 결론이 나왔다.
서클은 이미 뉴욕에서도 갔다 왔는데…는 개드립이고 택시를 잡아 타고 듀퐁 서클로 향했다.
날씨가 매우 후덥지근 했는데도 기사는 에어컨과 자신은 애초에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고자세로 묵묵히 운전했다.
덕분에 그다지 건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갈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미친 듯이 흑인만 많은 동네를 통과했는데, 위에서 언급했던 미국 사회의 불편한 단면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외계인이라도 침공해 오지 않는 이상 이 작은 행성에서 범인류적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듀퐁 서클은 뭐 생각보다 별 게 없었다.
그냥 좀 비싸보이는 숙박 시설들과 거기에 딸린 바, 카페 정도가 전부였다.

카메라가 확실히 좋은 것 같다. 내 손으로 이 정도 깔끔한 야경을 잡아냈다니.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바 듀퐁(Bar Dupont)이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원래는 그 옆에 있는 카페 듀퐁에 가려고 했으나 이미 문을 닫아버려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야외 테이블은 만원이었는데 무슨 침대 매트리스 같은 것을 깔아놓고 거기에 걸터 앉아 술을 먹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거의 거지나 다를 바 없는 꼴이었지만 이 곳은 미국이다라는 안경을 끼고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었다.
참 미국적인 풍경.

바 듀퐁의 내부. 상당히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술을 먹기에는 여러 모로 부담이 있었기에 아이스크림이랑 무슨 이상한 파이인지 케이크인지 하는 것을 시켰다.
분위기도 괜찮았고 우리가 앉아 있던 쪽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어서 또 한 번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한다는 것은 좀 부끄러운 일이었기에 그냥 한 명이 다른 세 명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대충 시켰던 것을 다 해치워 먹고, 우리가 술을 시키지 않아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웨이터에게 팁을 듬뿍 주고 나왔다.
바로 택시를 잡고 친구 C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식으로 관광을 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낮 관광과 밤 관광은 굉장히 다른 의미를 띨 수 있다.
유명한 관광지에 대해 자세한 공부를 하고 가서 디테일한 면면까지 보고 음미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아침부터 시작해 낮에 끝나는 관광이 적절할 것이고, 그냥 대충 가서 쓱쓱 보고 기념 사진을 찍어 오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낮 관광이냐 밤 관광이냐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서 뭘 보는 것은 둘째 치고, 애초에 그런 관광지를 들르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 나와 같은 여행객에게는 단연 밤 관광이 좋은 선택이다.
밤에까지 불을 켜서 비춰주는 건물들은 모두 유명한 건물들일 것이기 때문에 가이드 북을 보는 수고로움, 저게 무슨 유명한 건물이냐고 묻는 번거로움 등이 모두 불필요하다.
굳이 관심이 생긴다면 사진을 찍었다가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 보면 되고, 뭐 별로 관심이 없다면 그냥 모양만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어디 가서 아는 척이나 잘 하면 된다.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 것만으로 듀퐁 서클~조지 타운 근처에 있는 유명한 건물들은 모두 구경한 것 같았다.

아주 효율적이면서 내 맘에 쏙쏙 드는 워싱턴 관광이었다.
내가 봤던 그 유명한 건물들은 다음 포스팅에서 짧게 언급하기로 한다.

C의 집에 도착해 다들 잘 준비를 마쳤다.
그래도 그냥 자기에는 뭔가 아쉬운 감이 있어 집에 있던 와인을 딴 것이 아니고 영화나 한 편 같이 보고 자기로 했다.
나는 자신 있게 <인류멸망보고서>를 보자고 외쳤고, 우리는 영화가 다 끝나기 전에 그냥 자게 되었다.
한 새벽 3시쯤 됐을 것이다.

워싱턴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저물었다.
역시, 버스 정류장보다는 사람 사는 집이 자기에는 훨씬 편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