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17 : 노숙자가 부릅니다. 버스 정류장.

| 2012. 6. 1. 12:23

내가 도착했던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은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이 밀집되어 있는, 장거리 교통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단순히 공간이 수용해야 하는 인프라만 따져도 넓은 공간이 필요한 터에 많은 유동 인구와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편의 시설 등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건물 크기가 상당히 큰 편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는 데에만 한 5분은 넘게 걸렸던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기차와 지하철, 시내 버스 등 대중 교통 컴플렉스라고 부를 수 있는 서울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외부로 튀어 나온 건물만 보면 유니언 스테이션이 더 크지 않을까 싶었다.
정문만 해도 규모가 이 정도가 되니 말이다.

잘 나온 줄 알았는데 밤이라 그런지 역시나 흔들린 티가 좀 난다.

버스에서 거의 깨지 않고 잠을 자긴 했지만 안락함의 부재 때문인지 몸에 쌓인 피로가 모두 해소되지는 않았다.
밖에서 서성거리면서 필라델피아에서 출발한 친구의 룸메이트 ㅡ 이렇게 말하면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인 것 같지만 그냥 내 친구라고 해도 무방하다. 단지 뉴욕에서부터 같이 다니던 친구와 구분하기 위해 친구의 룸메이트라는 호칭을 썼다. ㅡ 를 기다렸다.
도착 예정 시각을 비슷하게 맞췄지만 아무래도 버스가 조금 늦게 도착하는 모양이었다.

저 멀리 미국 국회 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이 보였다.
비록 이제 막 터미널에 도착한 셈이었지만 워싱턴에 도착한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손 떨림이 많이 없어졌나보다. 줌을 최고로 당겨서 찍은 사진인데 깔끔하게 잘 나왔네.

약 20분 정도 기다려서 친구의 룸메이트와 만날 수 있었다.
워싱턴에서 숙소를 제공할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이 프라이데이 나잇에 무엇을 할지 의논했다.
여름 방학에 인턴을 하면서 막 워싱턴에 정착했던 친구라 그런지 지역 정보에 그다지 밝은 편은 아니었다.
일단 밤도 꽤 늦었고 다들 여로에 지쳤을 것 같으니 편하게 한인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자고 했다.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지 딱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한인 식당이 갖는 메리트를 별로 없는 편이었지만 유학생들의 처지를 고려하고 다수의 입장을 존중해 흔쾌히 승낙했다.

잠시 빠지는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여태까지는 나를 중심으로 친구 한 명만이 조연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단역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였지만 이제부터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도저히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는 여행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구분하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렀으니 간단하게 친구 A, 친구 B, 친구 C라고 명명하겠다.
친구 A는 이번 나의 미국 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장본인이자 내 미국 생활의 과거와 현재, 미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할 사람으로 뉴욕 여행을 같이 떠났던 친구다.
친구 B는 그 친구의 룸메이트이고 당연히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
친구 C는 워싱턴에서 인턴을 하며 잠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이면서 동시에 공교롭게도 나의 군대 선임이었다.
세 친구는 모두 같은 대학교를 다녀서 알게 된 사이.
이 정도면 대충 정리가 됐으리라 본다.

택시를 잡고 친구 C가 알려준 주소를 불렀다.
도시 외곽 고속도로 같은 도로를 탔는데 저 멀리에 펜타곤이 보였다.
뭐 굳이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꽤나 멀리 왔는데도 불구하고 목적지 근처에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기사에게 어디쯤 왔냐고 물었더니 이제야 우리가 가는 스트릿의 초입이라고.
'이 아랍계 기사가 우리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는 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마땅히 다른 선택권이 없었기에 묵묵히 앉아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상당히 오래 택시를 타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 뒤에도 한 10분에서 15분은 더 차를 탔던 것 같다.
이쯤 되면 겁을 먹을 사람이 우리가 아니고 오히려 점점 더 후미진 곳으로 향해 가고 있는 이 택시 기사일 것이라는 역지사지의 동정심마저 들 지경이었다.
목표였던 70가에 다다르기 전인 65가쯤부터 슬슬 반가운 한글 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충 이쯤에서 내리면 되겠다 싶은 곳에서 차를 멈추고 값을 치르고 내렸다.

친구 C가 알려준 주소에 거의 정확히 도착했지만 그가 알려준 상호명 ㅡ 레드 포차인가 뭐시기였다 ㅡ 은 찾을 수 없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 C를 기다리며 주변을 좀 둘러보았다.
오면서 보였던 가게는 꽤 됐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서는 마땅히 갈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친구 A는 뉴욕의 한인 타운과는 다르게 가게들이 조금씩 거리를 두고 모여 있는 형태인 것 같다고 했다.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바로 옆에 노래방이 붙어 있는 무슨 꿀돼지 어쩌구 고기집에 들어갔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 ㅡ 대부분이 한국인이었겠지 ㅡ 이 술과 고기를 섭취하고 있었다.
외국인들도 적지 않게 보이는 것을 보니 그렇게 안 유명하거나 맛이 없는 집은 아닌 인상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양념 곱창을 시키고 친구 C를 기다렸다.

이 정도면 뭐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

친구 C는 곧 도착했다.
별로 먹은 것은 없는 하루였지만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았던 탓에 고기를 왕창 먹지는 않았다.
처음에 시켰던 곱창 2인분에 볶음밥만으로 네 명이 부족하지 않게 배를 채웠다.
고기를 먹는데 당연히 술이 빠질 수는 없었다.
백세주와 소주가 가격이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몸에 부담이 가지 않는 백세주를 먹기는 커녕, 남자는 역시 소주라며 소주만 먹었다.
넷이서 세 병을 갈라 먹었으니 뭐 다들 술 기운은 적당히 올라왔으리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노래방으로 2차를 갔다.
입장 시각이 약 새벽 1시였는데 술을 먹으려면 1시 50분까지 모든 음주를 마쳐야 한다는 조건이 걸렸다.
솔직히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그냥 적당히 마시거나, 애초에 술을 진탕 먹으려는 계획이었다면 집으로 자리를 옮겨 먹는 것이 합당했으나 남자들의 머리란 수가 모일수록 집단 지능이 더 저하되기 마련이 아닌가.
2년 기념일과 전역 후 2달 기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내가 축하주를 먹어야 한다는 개드립이 현실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오지만, 또 난 그걸 거부하지 않았다.
소주 세 병과 맥주 세 병을 시켜 놓고는 부어라 마셔라 신나게 술을 먹었다.
물론 그 중의 1/3 이상이 나의 위장으로 직행했다.
신나게 놀고 나왔다.
노래방에서 제공해주는 봉고 택시를 타고 친구 C의 집으로 출발했다.

아무래도 유니언 스테이션이라는 곳이 워싱턴의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텐데, 거기서 그렇게나 멀리 택시를 타고 왔다면 당연히 친구 C의 집도 먼 거리에 위치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또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돌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와일드우드 타워(Wildwood tower)인가 하는 곳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친구 A는 피곤한지 잠에 들었다.
친구 B와 친구 C와 나는 3차로 와인을 먹기 시작했다.
나름 치즈와 크래커까지 놓고 분위기 있게 먹었다.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셋이서 와인 한 병을 싹 비웠다.
실내가 조금 답답했던 나는 재킷을 차려 입고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기로 했다.
당연히 방 번호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서 휴대폰에 방 번호를 찍어 놓고 나왔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건물 바로 앞 주차장을 조금 거닐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아니, "나갈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들어올 때는 아니란다."였다.
로비에서 근무하던 마음씨 나쁘게 생긴 흑인 아저씨의 말은.

이곳에 사는 친구가 있고 나는 그 친구 집에서 하루를 머무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그가 몇 호로 가느냐고 물었다.
이 사람이 끝까지 의심을 하는구나 하며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통화 목록을 조회했다.
나오면서 찍었던 방 번호가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통신사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내 휴대폰은 통화 기능 자체가 꺼져 있었고 방 번호를 누른 뒤 통화 버튼을 눌러 번호를 저장해두려던 나의 시도는 완전한 삽질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황한 나는 혹시 친구의 이름으로 방 번호를 검색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미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던 흑인 아저씨는 한 번 해보겠다며 성을 물었고 나는 오-에이치라고 대답했다.
컴퓨터를 두드리던 그는 그런 이름으로 검색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친구 C는 워싱턴에 인턴 차 거주하고 있는 것이라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이 아닌 곳에 더부살이를 하던 중이었다는 사실이 그 때서야 생각났다.
앗차 싶었지만 차분하게 그럼 전화를 한 통 쓸 수 있겠냐고 물었다.
옛 통화 기록에 친구 A의 연락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는 자기가 걸겠다던 흑인 아저씨에게 번호를 차근차근 불러주었다.
하지만 이미 뻗어버린 나의 친구 A도, 그리고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잠에 골아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B와 C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일단 내가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 되기만 하면 모든 의혹은 풀 수 있을 터.
나는 사정을 설명하면서 얌전하게 있을 테니 로비에서 아침까지 있으면 안 되겠냐고 부드럽게 부탁했다.

돌아온 대답은.

물론 손 동작이 동반된 건 아니었고 그냥 안 된다고 했다.

나에게 150%의 의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그는 로비에서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은 이 건물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차분히 설명하면, 또는 일을 그딴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며 협박조로 나갔다면 어떻게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이미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던 나는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

이것이 내 미국 노숙의 시작이었다.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중에 정황을 추정한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이 때부터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밖으로 나간 나는 일단 전화를 빌려 쓸 수 있는 사람부터 찾았던 모양이다.
새벽 4시 30분경에 누군가를 만난 나는 다시 친구 A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역시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곰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왜 운명의 여신은 나에게 순탄한 삶을 주지 않는 것인지, 대체 내가 여기에 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왜 나는 술과 싸워서 이길 수 없는 건지, 골드버그의 추측은 어떤 식으로 증명할 수 있을지, 지금도 명왕성으로 날아가고 있는 뉴 호라이즌스 호는 대체 얼마나 외로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 깊은 고찰을 했을까?
나도 모른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내가 어느 순간에 잠에 들었다는 것.

목이 굉장히 따갑다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보니 어느 새 아침이었다.
강한 아침 햇살이 내 뒷목을 몇 시간째 강타하고 있었던 모양.
정신을 차려보려고 했지만 술 기운에 피로가 겹쳐 도저히 제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 새벽은 무사히 넘겼고 날도 이렇게 밝았으니 더 이상 무슨 재앙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나는 일단 앉아서 좀 더 자기로 했다.
하지만 사방에서 햇빛이 쏟아지는 그 정류장은 자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잘 만한 곳을 찾으러 갔다.

왜 바로 어제의 집에 찾아가지 않았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태까지 날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대충 세 친구들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바로 지난 새벽에 내가 걸었던 두 통의 전화가 모두 무시당했다는 점에서 친구들은 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예 내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잠에 들었거나 언젠가는 들어오겠거니 생각하고 잠을 잔 것이 틀림 없었다.
둘째로 녀석들의 생활 패턴을 보건대 어제 그렇게 늦게까지 놀아놓고 이 아침에 일어났을 리가 없었다.
다시 건물을 찾아간다고 해도 로비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렇게 귀찮은 일을 벌이느니 그냥 밖에서 어떻게든 잠이라도 보충하자는 결론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에 와서 하는 생각이 아니고, 당시 나의 실제 판단이 이랬다.

어쨌든 적당한 장소를 찾은 나는 다시 잠에 빠졌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오전 11시 무렵.
그때서야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와일드우드 타워로 옮겼고 이미 로비에 나와 있던 친구 세 명과 정말 눈물 겨운 재회를 할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내가 가장 처음에 들어야 했던 말은 까딱하면 정말 큰 일이 났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당연한 말이다.
치안이 나쁘지 않기로 유명한 우리 나라에서조차 술 먹은 뒤 노숙은 위험한 일인데, 미국 같은 나라에서 이렇게 무사하게 돌아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것이 그네들의 설명.
날씨가 좋은 계절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도 다행스러운 일 중의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일이 잘 풀렸으니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겼더라면 나는 평생 술을 먹지 않으리라고 ㅡ 아예 다신 술을 먹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 ㅡ 다짐했었을 것이다.
돌이켜 볼수록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친구들의 사정을 물었다.
나의 예상대로 친구들은 내가 나간 뒤에 거의 바로 잠에 들었다.
그나마 손님을 맞는 입장의 친구 C는 내가 나중에 방으로 돌아올 것에 대비해 문도 열어두고 침대 자리도 내어주었다곤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새벽에 실종된 나를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오전에는?
아무래도 먼저 잠에 들었던 친구 A가 가장 일찍 일어났고, 내가 집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 다른 친구 둘을 깨워 미아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당연히 경찰에라도 먼저 연락했던 것인 줄 알았으나, 그들은 내가 술을 먹고 어딘가에 뻗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는 건물의 계단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구역을 나누어 모든 계단을 훑었지만 나는 발견되지 않았고, 로비 직원들에게 이러이러한 망할 에이시안 친구를 보았냐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직원은 자신은 아침에 쉬프트로 교체된 사람이라며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내놓았고 딱 그 상황에서 이제 어디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딱 내가 건물에 나타났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론.

뭐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중요한 것은 내가 무사하게 돌아와 다시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이 아닌가.
긴장이 한 번 탁 풀리니까 참았던 피로가 무한히 쏟아졌다.
중력 가속도가 한 세 배로 증가한 느낌을 받은 나는 일단 방에 가서 좀 더 쉬자고 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술 기운에 정확히 내가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는 꿀잠에 빠졌다.
죽은 듯이 한 6시간을 내리 잤다.
미국에서 잤던 잠 중에서 가장 깊고 편하고 잤던 잠이었으리라.

오후 5시 무렵에 잠에서 깼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고 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친구 C가 유튜브에서 버스커버스커의 '정류장'을 찾아 틀어주었다.
왠지 모르게 가사들이 가슴에 뭉클하게 와닿았다.
그렇게 나는 워싱턴에서의 노숙 업적을 달성한 사람이 되었다.

재미 있는 사실은 사실 친구의 집이 있던 곳이 워싱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고기를 먹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먹었던 그 동네는 알고 보니 버지니아 주의 알링턴이라는 곳이었다.
전 날 택시의 미스테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업적이 워싱턴에서의 노숙이 아니라 버지니아에서의 노숙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노숙"이라는 키워드는 불변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씻고 정신을 차린 뒤 다 같이 모여 워싱턴 시내 관광 계획을 세웠다.
다음 포스트는 본격적인 워싱턴 관광 포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