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 2014. 9. 2. 22:59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필연적이지도 않았던 인연으로 관계를 맺게 된 분의 책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러 만나러 간 자리가 하필이면 이 책의 북 콘서트(?) 겸 정모 같은 자리여서 나도 모르게 책 한 권을 즉석에서 구매하게 되었다. 평소 즐겨 듣던 팟캐스트 코너의 전신격인 팟캐스트를 정리해서 책으로 냈다고 하니, 당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음에도 사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서론에서부터 책의 본 내용까지 나 같은 경제 문외한이 가타부타 나설 만한 여지는 전혀 없다. 서문에 나왔던 대로 대학교에서 경제학 개론 정도의 강의를 들은 수준의 사람이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난이도이기 때문에 사실 일방향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사고를 하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 주의해야 하는 것은, 역시나 서문에 언급이 된 내용인데, 이 책의 내용조차 어느 정도 한쪽으로 쏠려 있음을 인지하고 독자 고유의 잣대에 맞게 정보를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팟캐스트의 방향 자체가 흔히 오해 받고 있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재조명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대안 경제학의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주된 경제 교육의 내용과 상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어디 가서 그저 아는 척을 조금만 더 할 수 있는 정도로 가볍고 빠르게 책을 읽어나갔다.

항상 비판적으로 사고하자.

나에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던 인물은 케인즈였다. 기본적으로 천재적인 지력을 소유한 괴짜에 호감이 있는 내게 케인즈의 기본적인 사고 방식은 이성적이고 실용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을 앞으로 읽어볼 책 목록에 올려두었다. 물론 원서를 읽긴 힘들겠고 해설을 해놓은 책 정도나 사서 훌훌 훑어보게 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경제학적인 지식은 부족하고, 그렇지만 이 놈의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현대 자본주의는 어딘가 못마땅하고, 그런 현실에 어떤 대안들이 있는지, 주류 경제학이 가진 맹점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쏠쏠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아래의 인용된 구절들은 그것들이 사실로서 인상 깊다기보단 하나의 주장으로서 나중에도 다시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 위주로 골랐다. 나는 영 경제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니, 혹시나 뭔가 사실과 어긋나 있다고 해서 너무 발발 뛰면 안 된다는 말이다.

김: 어쨌든 오늘 우리가 마르크스의 공황 이야기를 했는데요. 자본주의에서는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가 발생하게 마련이라 이를 메우기 위한 기술적 뻥튀기가 행해지죠. 그러다 거품이 터지는 신용공황이 발생하면서 실물경제까지 일거에 무너지는 현상이 바로 공황인데요. 문제는 이 공황을 뒷수습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어마어마한 돈을 퍼붓는데, 그 돈은 결국 자본가에게 가고 나중에 이를 메우는 사람들은 일반 노동자들이라는 얘기죠. 마침내 자본주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선명하게 보이는군요. 바로 국가는 열심히 간섭하고 개입하고 있다. 왜? 자본을 살리기 위해서. (후략)

조: (전략) 마르크스가 보기에 공황은 구조적이고 필연적이며 반복될 수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자본주의가 극복되지 않은 이상 대안은 없다고 봅니다. 자본주의에서 공황은 여러 차례 반복되고 그사이에 호황과 활황 국면을 거치는데, 이때마다 꼭 나오는 참 재미있는 주장이 있어요. "이번만은 다르다." (중략) 아마 이번 공황도 어떤 식으로든 수습이 될 겁니다. 그리고 또 호황과 활황 국면이 오겠죠. 그때가 되면 똑같은 말들이 다시 반복될 겁니다. 내기해볼까요?

언젠가 케인스는, 처방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정보가 바뀌면 결론을 바꿉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케인스의 말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2차대전 때처럼 전쟁이 항상 경기를 일으켜 세울 리는 없습니다. 이 점은 2차대전과는 달리 명분도 없고 사회적 지지도 받지 못했던 베트남전쟁이 잘 보여주었지요. 삽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케인스는 이미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부터 전쟁을 통한 과도한 재정 팽창을 우려하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국가 미국의 정치인들은 몰랐나 봅니다. 전쟁으로 재미 보는 행운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는 사실을. 한국의 상당수 정치인들도 모르고 있습니다. 삽질이 항상 대안은 아니라는 것을.

조: 실제로 슘페터를 인용하면서 대기업 CEO나 임원들의 어마어마한 보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슘페터가 말한 혁신의 대가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분명히 물어야 합니다. 과연 그들이 슘페터가 말했던 바에 비추어 어떤 혁신을 했는가? 슘페터의 기준에서 봤을 때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을 얼마나 했느냐고 질문해야 합니다.

사실 이 사람들의 주장은 인과관계를 거꾸로 뒤집은 것입니다. 슘페터는 혁신하는 기업가에게 당연히 그만큼의 초과이윤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을 뿐, 혁신을 유도하기 위해 자본가와 CEO에게 먼저 막대한 이윤을 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막대한 보상에 이끌려 열심히 혁신한다? 이건 슘페터가 보기엔 언어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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