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즐겁자고 본 영화는 절대 아니다.
아니, 다시 말하면 안구 정화를 위해 본 영화는 아니었다.
시제가 과거로 바뀐 것은, 원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니 뭐 남는 게 없어서 눈이라도 호강했다는 이야기를 꼭 덧붙여야 '나탈리'에 투자한 내 집중과 시간에 최소한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탈리'의 볼거리는 문제가 된 그 정사(情事) 신(scene) 그것이 전부다.
아니, 여기서 한 번만 더 다시 말하면, '나탈리'는 사실 그 정사 신마저 보잘 것 없다.
문제는 무엇인가?
여배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음모(陰毛)론의 주인공 박현진은 한국의 에바 그린이라해도 좋을 만큼 고혹적인 눈빛과 서구적인 얼굴선을 가진 배우다. 1
비록 흉부 성형의 흔적이 역력히 보이기는 하지만 외모는 나무랄 데 없다.
그래, 문제는 이 여주인공의 연기에 있다.
인트로에 나오는 다소 전위적인 느낌의 정사 신과 박 관장과의 두 번째 정사 신, 그리고 세 번째 정사 신을 비교하면 연기의 문제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박현진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녀의 전라 연기에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스토리의 흐름상 뒤의 두 정사 신이 그녀의 정사 신보다 더 격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정사 신이 상대적으로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참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성재와 박현진이 플라토닉적인 행위 장면을 연출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녀의 연기가 뭔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것은 엄연한 사실.
정사 신 연기에의 최소 필요 조건에 입각하여 '이 사람은 경험이 없나?' 싶을 정도로 밋밋하다.
정사 신에서 배우들의 연기만을 놓고 본다면 나의 베스트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그 모텔에서의 몸부림이다.
실감 넘친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박현진에게 돌릴 수만은 없다.
국내 최초 3D 정사 신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나탈리'는 3D라는 그 엄청난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헛방아만 찍었다.
네이버 영화 평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이 한 야동 전문가의 평을 보면 '나탈리'의 안타까운 카메라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감독과 카메라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느낌의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는지는 그들만이 아는 문제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보기에 '나탈리'의 정사 신은 상당히 관조적이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 그들만의 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며, 그렇기 때문에 현실성도 떨어지도 몰입도도 떨어진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나탈리'의 정사 신은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실망스러운 영화냐?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혹자는 나를 정사 신에만 집착하는 성 도착증 환자로 몰며 '나탈리'의 본질은 아이를 만드는 행위이되 아이를 안 만드려는 이중적 육체 활동에 있는 것이 아니고 스토리에 있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이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리 봐도 ♪ 저리 봐도 ♬ '나탈리'의 핵심이 섹스가 아닌 이야기에 있다는 주장은 생간 먹는 아이유의 모습이 혐오하고 불쾌하고 저급하다는 주장만큼이나 개똥 같은 소리에 불과하다.
나탈리의 플롯은 처음부터 구질구질하다.
이성재와 김지훈의 만남부터가 어색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그것도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상황에서 사랑과 섹스 문제로 엄청난 신경전을 벌인다.
성 도착증 환자는 내가 아니라 바로 저 극 중의 두 인물이다.
물론 바로 뒤이어 두 사람의 나탈리라는 작품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드러나며 스토리의 개연성에 어느 정도 신뢰를 부여하지만 여전히 극의 진행은 어색할 뿐이다.
너무 생뚱 맞아서 위화감이 들 지경이다.
연출의 저렴함 때문일 수도, 연기의 조악함 때문일 수도, 아니면 판에 박힌 대사 때문일 수도 있는 이 위화감은 아마도 세 번째 이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나탈리'의 대본은 수능을 위한 짧은 철학 공부를 한 고교생에게 배운 내용을 활용해 여자의 관능미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한다면 누구나 쓸 수 있을 만한 문장들로 가득차 있다.
영화는 김지훈이 제기하는 두 번째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조금 흥미를 끌기 시작한다.
같은 갈망 대상에 대해 그것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 플라토닉적 집착과 에로스적 갈망의 간극이 드러나며 진실 게임의 양상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욕망의 발현이 파국을 빚어낸다는 진부한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겨우 살아난 재미는 팍팍 감소한다.
평행적인 이야기 진행의 구조 자체는 신선했지만 그 이야기를 하나 하나 따로 떼어놓고 보면 중학교 3학년의 숙제 소설 정도의 시나리오로 전락해버린다.
뻔한 엔딩 만들어놓고 진지하게 오버하는 모습은 정말 지켜보는 게 더 힘들 정도.
어찌어찌하여 엔딩까지 왔다.
근데 이 영화는 대체 진실이 누구의 것인지 명확히 밝혀주질 않는다.
오픈 엔딩이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판단컨대 김태훈의 기억이 진실인 상황에서, 결국 미화하는 것이 이성재의 개똥 같은 욕망이라는 것, 그 욕망을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치장하는 것은 '추격자'에서 하정우의 살인이 여성들에 대한 진정한 애정에서 우러나왔다며 '추격자'의 이야기를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불성설이다.
대체 말하려는 바가 뭐지?
시작이야 어떻든 일단 육체적 관계를 가지면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우우, 모르겠다.
'약수터 부르스' 이후로 본 영화 중에 최악의 것이다.
대한민국의 에로티시즘이 이것밖에 안 된다면 다시는 노출 운운하며 화제가 되는 영화들을 볼 의향이 없다.
아니, 다시 말하면 안구 정화를 위해 본 영화는 아니었다.
시제가 과거로 바뀐 것은, 원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니 뭐 남는 게 없어서 눈이라도 호강했다는 이야기를 꼭 덧붙여야 '나탈리'에 투자한 내 집중과 시간에 최소한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탈리'의 볼거리는 문제가 된 그 정사(情事) 신(scene) 그것이 전부다.
|
아니, 여기서 한 번만 더 다시 말하면, '나탈리'는 사실 그 정사 신마저 보잘 것 없다.
문제는 무엇인가?
여배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음모(陰毛)론의 주인공 박현진은 한국의 에바 그린이라해도 좋을 만큼 고혹적인 눈빛과 서구적인 얼굴선을 가진 배우다. 1
비록 흉부 성형의 흔적이 역력히 보이기는 하지만 외모는 나무랄 데 없다.
http://www.nemopan.com/pan_issue/3795961
그래, 문제는 이 여주인공의 연기에 있다.
인트로에 나오는 다소 전위적인 느낌의 정사 신과 박 관장과의 두 번째 정사 신, 그리고 세 번째 정사 신을 비교하면 연기의 문제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박현진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녀의 전라 연기에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스토리의 흐름상 뒤의 두 정사 신이 그녀의 정사 신보다 더 격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정사 신이 상대적으로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참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성재와 박현진이 플라토닉적인 행위 장면을 연출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녀의 연기가 뭔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것은 엄연한 사실.
정사 신 연기에의 최소 필요 조건에 입각하여 '이 사람은 경험이 없나?' 싶을 정도로 밋밋하다.
정사 신에서 배우들의 연기만을 놓고 본다면 나의 베스트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그 모텔에서의 몸부림이다.
실감 넘친다.
오버 좀 보태서 거의 이런 느낌.
하지만 모든 문제를 박현진에게 돌릴 수만은 없다.
국내 최초 3D 정사 신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나탈리'는 3D라는 그 엄청난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헛방아만 찍었다.
네이버 영화 평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이 한 야동 전문가의 평을 보면 '나탈리'의 안타까운 카메라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감독과 카메라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느낌의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는지는 그들만이 아는 문제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보기에 '나탈리'의 정사 신은 상당히 관조적이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 그들만의 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며, 그렇기 때문에 현실성도 떨어지도 몰입도도 떨어진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나탈리'의 정사 신은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실망스러운 영화냐?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혹자는 나를 정사 신에만 집착하는 성 도착증 환자로 몰며 '나탈리'의 본질은 아이를 만드는 행위이되 아이를 안 만드려는 이중적 육체 활동에 있는 것이 아니고 스토리에 있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이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리 봐도 ♪ 저리 봐도 ♬ '나탈리'의 핵심이 섹스가 아닌 이야기에 있다는 주장은 생간 먹는 아이유의 모습이 혐오하고 불쾌하고 저급하다는 주장만큼이나 개똥 같은 소리에 불과하다.
진짜 이런 뉴스를 보고 있으면 내가 더 불쾌하다.
나탈리의 플롯은 처음부터 구질구질하다.
이성재와 김지훈의 만남부터가 어색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그것도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상황에서 사랑과 섹스 문제로 엄청난 신경전을 벌인다.
성 도착증 환자는 내가 아니라 바로 저 극 중의 두 인물이다.
물론 바로 뒤이어 두 사람의 나탈리라는 작품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드러나며 스토리의 개연성에 어느 정도 신뢰를 부여하지만 여전히 극의 진행은 어색할 뿐이다.
너무 생뚱 맞아서 위화감이 들 지경이다.
연출의 저렴함 때문일 수도, 연기의 조악함 때문일 수도, 아니면 판에 박힌 대사 때문일 수도 있는 이 위화감은 아마도 세 번째 이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나탈리'의 대본은 수능을 위한 짧은 철학 공부를 한 고교생에게 배운 내용을 활용해 여자의 관능미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한다면 누구나 쓸 수 있을 만한 문장들로 가득차 있다.
영화는 김지훈이 제기하는 두 번째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조금 흥미를 끌기 시작한다.
같은 갈망 대상에 대해 그것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 플라토닉적 집착과 에로스적 갈망의 간극이 드러나며 진실 게임의 양상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욕망의 발현이 파국을 빚어낸다는 진부한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겨우 살아난 재미는 팍팍 감소한다.
평행적인 이야기 진행의 구조 자체는 신선했지만 그 이야기를 하나 하나 따로 떼어놓고 보면 중학교 3학년의 숙제 소설 정도의 시나리오로 전락해버린다.
뻔한 엔딩 만들어놓고 진지하게 오버하는 모습은 정말 지켜보는 게 더 힘들 정도.
어찌어찌하여 엔딩까지 왔다.
근데 이 영화는 대체 진실이 누구의 것인지 명확히 밝혀주질 않는다.
오픈 엔딩이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판단컨대 김태훈의 기억이 진실인 상황에서, 결국 미화하는 것이 이성재의 개똥 같은 욕망이라는 것, 그 욕망을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치장하는 것은 '추격자'에서 하정우의 살인이 여성들에 대한 진정한 애정에서 우러나왔다며 '추격자'의 이야기를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불성설이다.
대체 말하려는 바가 뭐지?
시작이야 어떻든 일단 육체적 관계를 가지면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우우, 모르겠다.
'약수터 부르스' 이후로 본 영화 중에 최악의 것이다.
대한민국의 에로티시즘이 이것밖에 안 된다면 다시는 노출 운운하며 화제가 되는 영화들을 볼 의향이 없다.
- 분명히 박현진이라는 이름을 써왔는데 어느 새 박민경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과거를 덮으려는 시도라고 판단되어 나도 그 운동에 동참하고자 박현진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한다. [본문으로]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핀(The Finnn) <Beatles Over Zeppelin> (0) | 2012.02.14 |
---|---|
로지피피(RoseyPP) - 어른아이 (0) | 2012.02.13 |
제18회 Cantor 정기 공연 후기 (5) | 2012.02.13 |
Merry Christmas, Mr. Lawrence (0) | 2012.02.12 |
'Cologne' 가사 속에 숨은 이야기 (1) | 2012.02.11 |
Marvin Gaye - Distant lover (0) | 2012.02.09 |
순자와 춘희 <동시상영> (1) | 2012.02.08 |
범범(Bumbum) 대전 공연 후기를 가장한 2월 4일의 일기 (3) | 2012.02.07 |
Arctic Monkeys <Favourite Worst Nightmare> (2) | 2012.02.06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2) | 2012.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