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Cantor 정기 공연 후기

| 2012. 2. 13. 18:09

대원외고 동문 합창단 Cantor[각주:1]는 명실상부하게 대원외고를 대표하는 동아리다.
다른 것보다 대표로서의 정당성을 대변하는 역사와 규모면에서 대원외고의 다른 모든 동아리를 압도적으로 앞선다.
칸토 출신의 선배들이 대원외고 동문회에서 상당한 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방증이 될 수 있겠다.
그래도 내가 속해 있던 대원외고 유일무이의 밴드 동아리 별악(別樂)이 최고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해체 위기를 무사히 넘겼고 그 매우 부족한 실력에도 여태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걸 보면 진짜 대단한 동아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진정한 펑크 정신으로 무정해 기성 체제와 용맹하게 맞서 싸우는 별악 후배님들 모두 힘내길.

각설하고, 지난 토요일인 2월 11일 고려대학교 과학 도서관에서 열린 제18회 Cantor 정기 공연에 다녀왔다.
정기 공연은 내가 알기로 매년 이 시기쯤 이제 성인이 된 칸토 졸업생들이 여럿 모여 준비하는 말 그대로의 정기 공연으로, 2008년인가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어차피 고등학교 합창 동아리 공연에서 그 질로 엄청난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별 기대를 안 했지만 꼼꼼한 준비와 공연에 참여하는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자세에 감탄했다.
사실 고등학교 동아리 공연에서 인상 짙게 쓰고 실력을 따지는 일이 어디 가당키나 할까.
만약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경우 먼저 넉다운되어 떨어지는 동아리는 칸토가 아니라 별악일 게다.

이보다 더 고화질의 자료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금 각설하고, 추위를 열심히 뚫고 찾아간 칸토의 18회 정기 공연은 5,000원이라는 저렴한 입장료에도 불구 ㅡ 나는 그 5,000원마저 동기의 끈끈한 인류애로 면제 받을 수 있었다 ㅡ 하고 박수를 보낼 수준의 질을 선사했다.
어린 후배들의 치기 어린 진지함과 노련미와 여유가 넘치는 선배들의 완숙된 노래가 듣기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물론 기 중창[각주:2]의 경우 연습의 부족함이 역력히, 정말 역력히 보였지만 공연 당사자도 아닌 삼자의 입장에서 이를 무턱대고 비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유치원 생들의 앙증맞은 춤을 보고 왜 정지훈 이병처럼 춤 추지 못하냐고 화를 버럭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다.
자칫 부족한 실력에 묻힐 수 있는 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그 정도 수준에 까지라도 오르기 위해 흘렸던 숨겨진 땀을 찾아내 그것에 합당한 칭찬을 보내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칸토의 18회 정기 공연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싶다.

고려대학교 이공계 캠퍼스와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과학 도서관의 위치는 다소 낯설었지만, 대강당 안은 기대보다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무대 전면 조명의 부재는 아쉬웠으나, 전반적인 사운드 설비와 세팅은 준수했다.
피아노 반주의 실수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도 있으나 매끄러운 진행 덕에 금세 잊을 수 있었다.
'Baba Yetu'의 트렌디함과 라이온 킹 메들리의 클래식함이 공존했고, 중간 중간 숨겨진 해프닝은 관객 모두에게 큰 웃음을 주었으며, 앵콜로 이어진 칸토 주제곡[각주:3]은 자못 웅장함까지 느끼게 했다.

소소한 공연이었고 만족스럽게 봤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기대치를 분수에 맞게 내려놓아야만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 정도다.
  1. 옛날에는 그냥 칸토, 칸토 했는데 이 단어가 원래 스페인어라고 해 작년 언젠가부터 깐또르로 부르기로 했단다. 하지만 깐또르는 왠지 간지러워서 못 쓰겠다. 꼭 양조위를 량차오웨이, 주윤발을 저우룬파라고 부르는 것 같이 어색한 일로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계속 칸토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본문으로]
  2. 칸토로서의 한 무리가 아닌, 기수 별 소규모 중창을 일컫는 말. [본문으로]
  3. 뭔가 고유 명사의 이름이 있을 텐데 모른다. 멜로디가 아마 성당에서 들어본 성가 뭐랑 똑같았었는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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