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제국'의 오시마 나기사 감독 작품, 글램 락의 전설 데이빗 보위 출연작, 영화의 음악을 맡은 세계적 피아노 아티스트 류이치 사카모토 배우 출연작, 기타노 다케시의 초기 출연작.
어느 하나의 구절만 보더라도 흥미로운 영화처럼 보이는데 저 네 문구가 한 번에 적용되는 영화가 있을 줄이야.
비록 지금이 크리스마스 시즌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나름 겨울이고 태생적 음지에는 아직 눈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바로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다.
우리 말 제목은 '전장의 크리스마스'.
2차 세계대전 영국군으로 참전, 인도네시아에 일본군 포로 수용소 생활을 직접 겪은 로렌스 반 데 포스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본 사람들은 모두 동감하겠지만 그냥 맘 편히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감각의 제국'에서 굉장히 직설적인 화법을 보여준 오시마 나기사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선 등장 인물들이 말과 행동으로 의사를 소통하게 하지 않고 내면에서 내면으로 메시지를 전하게 하는 화법을 택했다.
물론 이는 평생을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서양인과 동양인의 조우라는 독특한 소재 덕에 가능한 설정이다.
주요 등장 인물은 꼭 조지 오웰을 닮은 톰 콘티가 연기한 로렌스 중령, 데이빗 보위가 연기한 셀리어스 소령, 류이치 사카모토가 연기한 요노이 대위, 기타노 다케시가 연기한 하라 상사.
얼추 영국 대 일본, 크게 봐서 서양 대 일본의 대결 구도를 연상시키고 실제로 이런 류의 갈등이 극을 통해 계속 드러나긴 하지만 이 영화의 주제를 일본적 가치관과 서양적 가치관의 갈등으로 잡는 것은 이 영화 전체를 포괄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어떤 구체적인 주제를 던지기도 곤란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 곳곳에 파편처럼 뿌려진 소주제들을 하나 하나 파악하기도 어려운 일이고, 그들을 묶어 어떤 하나의 총체적 주제를 뽑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영화를 보면서 짧게 메모해둔 조각들을 그저 주욱 늘어놓는 것뿐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전장에서 펼쳐지는 동성애 코드, 아르누보한 분위기의 그로테스크한 할복, 동양적 미장센이 갖는 아방가르드함이다.
등장 인물들의 대화에서 우리는 수치, 집단 광기, 잔인함, 비인간성, 동성애, 전체주의, 구속 등의 가치 집단과 그에 맞서는 명예, 인간애, 존중, 우정, 크리스쳐니즘 등의 가치 집단의 대립과 화해를 느낄 수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인간 관계가 싹틀리 없지만 이들은 그런 불균형적인 구조 속에서 최대한의 교감을 나누며 자신이 굳건히 지켜온 가치관을 상대에게 공유한다.
기존의 가치관과 상대로부터 전해오는 가치관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나는 동양의 서양화, 서양의 동양화, 또는 역방향의 스톡홀름 신드롬을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국화와 칼'에서 힐끗 힐끗 봤던 내용이 생각나더라.
당시에 책을 보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서양 사람들에게 일본이라는 나라의 매우 독특한 가치관은 충분히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미지의 세계다.
한 권의 잘 만들어진 보고서를 쓴다 해도 그 정서를 충분히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따라서 이해를 가장한 오해가 난무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에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다.
비록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 공통 수단을 통해 전달하는 내용은, 다시 말해 전달하고자 의도하는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분석적으로 보기 좋아하는 나는 이 영화를 매우 난해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가 개개의 사건에 개연성이 없다.
이야기의 흐름이 무작위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가 대사 없는 무성 영화로 제작되었다 하더라도 이야기에 대한 이해도는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다.
도무지 인물들의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비유하면,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커츠 대령 같이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는 인물들만 잔뜩 등장하는 동양판 '지옥의 묵시록'이다.
영화를 통해 양쪽 중 한 편을 옹호하는 옹졸한 짓을 한다기에 진흙탕 싸움이다.
할복을 지켜보라고 지시하는 것, 동성애적 코드의 계속된 등장, 셀리어스 소령의 뽀뽀, 거기에 뒤로 넘어가는 요노이 대위, 소령의 어린 시절 이야기, 영화에서 나오는 크리스마스의 의미 등 도대체가 제대로 이해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나마 어렴풋이 집어낼 수 있는 메시지는 영화 마지막 반전된 상황에서 드러나는 가치관의 전복을 통해 힘의 논리는 이렇듯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며 결국 그 누구도 옳지 않다는 허무주의 정도?
하지만 '브라더' 마지막 장면에서의 울음보다, '달콤한 인생' 마지막 장면에서의 주먹질보다 심오한 것을 담고 있는 듯한 하라 상사의 이 표정은 어찌 해석할 것인가.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은 원작 소설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에도 없으면 말고.
스토리에 대한 개똥 같은 이야기를 그만 두고 그 외의 요소들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평을 끝낸다.
젊은 날의 기타노 다케시는 역시 빛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죽거리는 웃음, 꿈뻑이는 얼굴 모두 이 때부터 있던 버릇이었나보다.
후천적 오드아이를 가진 데이빗 보위는 정말 멋있게 나오고 ㅡ 사실 원래가 멋있는 사람이겠지, 류이치 사카모토는 연기를 못해서 그런 건지 정말 연기를 잘해서 그런 건지 꽤나 의미심장한 표정을 잘 지으며 톰 콘티는 진짜 조지 오웰처럼 생겼다.
때때로 등장하는 구타 연기는 매우 조악하다.
마지막으로 음악은, 따로 말할 필요 없이 훌륭하다.
어느 하나의 구절만 보더라도 흥미로운 영화처럼 보이는데 저 네 문구가 한 번에 적용되는 영화가 있을 줄이야.
비록 지금이 크리스마스 시즌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나름 겨울이고 태생적 음지에는 아직 눈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바로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다.
우리 말 제목은 '전장의 크리스마스'.
데이빗 보위와 류이치 사카모토. http://bombsite.com/issues/114/articles/4724
2차 세계대전 영국군으로 참전, 인도네시아에 일본군 포로 수용소 생활을 직접 겪은 로렌스 반 데 포스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본 사람들은 모두 동감하겠지만 그냥 맘 편히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감각의 제국'에서 굉장히 직설적인 화법을 보여준 오시마 나기사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선 등장 인물들이 말과 행동으로 의사를 소통하게 하지 않고 내면에서 내면으로 메시지를 전하게 하는 화법을 택했다.
물론 이는 평생을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서양인과 동양인의 조우라는 독특한 소재 덕에 가능한 설정이다.
주요 등장 인물은 꼭 조지 오웰을 닮은 톰 콘티가 연기한 로렌스 중령, 데이빗 보위가 연기한 셀리어스 소령, 류이치 사카모토가 연기한 요노이 대위, 기타노 다케시가 연기한 하라 상사.
얼추 영국 대 일본, 크게 봐서 서양 대 일본의 대결 구도를 연상시키고 실제로 이런 류의 갈등이 극을 통해 계속 드러나긴 하지만 이 영화의 주제를 일본적 가치관과 서양적 가치관의 갈등으로 잡는 것은 이 영화 전체를 포괄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어떤 구체적인 주제를 던지기도 곤란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 곳곳에 파편처럼 뿌려진 소주제들을 하나 하나 파악하기도 어려운 일이고, 그들을 묶어 어떤 하나의 총체적 주제를 뽑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영화를 보면서 짧게 메모해둔 조각들을 그저 주욱 늘어놓는 것뿐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전장에서 펼쳐지는 동성애 코드, 아르누보한 분위기의 그로테스크한 할복, 동양적 미장센이 갖는 아방가르드함이다.
등장 인물들의 대화에서 우리는 수치, 집단 광기, 잔인함, 비인간성, 동성애, 전체주의, 구속 등의 가치 집단과 그에 맞서는 명예, 인간애, 존중, 우정, 크리스쳐니즘 등의 가치 집단의 대립과 화해를 느낄 수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인간 관계가 싹틀리 없지만 이들은 그런 불균형적인 구조 속에서 최대한의 교감을 나누며 자신이 굳건히 지켜온 가치관을 상대에게 공유한다.
기존의 가치관과 상대로부터 전해오는 가치관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나는 동양의 서양화, 서양의 동양화, 또는 역방향의 스톡홀름 신드롬을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국화와 칼'에서 힐끗 힐끗 봤던 내용이 생각나더라.
당시에 책을 보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서양 사람들에게 일본이라는 나라의 매우 독특한 가치관은 충분히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미지의 세계다.
한 권의 잘 만들어진 보고서를 쓴다 해도 그 정서를 충분히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따라서 이해를 가장한 오해가 난무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에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다.
비록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 공통 수단을 통해 전달하는 내용은, 다시 말해 전달하고자 의도하는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다.
같은 언어, 다른 내용.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분석적으로 보기 좋아하는 나는 이 영화를 매우 난해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가 개개의 사건에 개연성이 없다.
이야기의 흐름이 무작위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가 대사 없는 무성 영화로 제작되었다 하더라도 이야기에 대한 이해도는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다.
도무지 인물들의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비유하면,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커츠 대령 같이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는 인물들만 잔뜩 등장하는 동양판 '지옥의 묵시록'이다.
영화를 통해 양쪽 중 한 편을 옹호하는 옹졸한 짓을 한다기에 진흙탕 싸움이다.
할복을 지켜보라고 지시하는 것, 동성애적 코드의 계속된 등장, 셀리어스 소령의 뽀뽀, 거기에 뒤로 넘어가는 요노이 대위, 소령의 어린 시절 이야기, 영화에서 나오는 크리스마스의 의미 등 도대체가 제대로 이해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나마 어렴풋이 집어낼 수 있는 메시지는 영화 마지막 반전된 상황에서 드러나는 가치관의 전복을 통해 힘의 논리는 이렇듯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며 결국 그 누구도 옳지 않다는 허무주의 정도?
하지만 '브라더' 마지막 장면에서의 울음보다, '달콤한 인생' 마지막 장면에서의 주먹질보다 심오한 것을 담고 있는 듯한 하라 상사의 이 표정은 어찌 해석할 것인가.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은 원작 소설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에도 없으면 말고.
스토리에 대한 개똥 같은 이야기를 그만 두고 그 외의 요소들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평을 끝낸다.
젊은 날의 기타노 다케시는 역시 빛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죽거리는 웃음, 꿈뻑이는 얼굴 모두 이 때부터 있던 버릇이었나보다.
후천적 오드아이를 가진 데이빗 보위는 정말 멋있게 나오고 ㅡ 사실 원래가 멋있는 사람이겠지, 류이치 사카모토는 연기를 못해서 그런 건지 정말 연기를 잘해서 그런 건지 꽤나 의미심장한 표정을 잘 지으며 톰 콘티는 진짜 조지 오웰처럼 생겼다.
때때로 등장하는 구타 연기는 매우 조악하다.
마지막으로 음악은, 따로 말할 필요 없이 훌륭하다.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Cage The Elephant <Thank You, Happy Birthday> (0) | 2012.02.17 |
---|---|
A Beautiful Mind (0) | 2012.02.16 |
더 핀(The Finnn) <Beatles Over Zeppelin> (0) | 2012.02.14 |
로지피피(RoseyPP) - 어른아이 (0) | 2012.02.13 |
제18회 Cantor 정기 공연 후기 (5) | 2012.02.13 |
'Cologne' 가사 속에 숨은 이야기 (1) | 2012.02.11 |
나탈리 (1) | 2012.02.09 |
Marvin Gaye - Distant lover (0) | 2012.02.09 |
순자와 춘희 <동시상영> (1) | 2012.02.08 |
범범(Bumbum) 대전 공연 후기를 가장한 2월 4일의 일기 (3) | 2012.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