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맞다면 이 책을 읽어보려고 시도한 것이 아마 세 번쯤 되었을 것이다. 지난 두 번의 시도에서 철저하게 패배를 당한 나는, 다시 말해 도저히 더 이상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은 것이 두 번이나 된 나는 이번만큼은 이 녀석을 정복하리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끈덕지게 덤볐더랬다. 사실 핸드북 사이즈에 페이지 수도 150페이지 남짓되는 책이기 때문에 무슨 "정복"이니 "신념"이니 하는 단어를 쓰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이 책이 상정하고 있는 예상 독자의 지식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입장에서라면 충분히 진심을 담은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웬만하면 책이든 영화든 보고 나서 아는 척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대해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고 중간 중간 내용의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지금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내용도 별로 없다. 하지만 인상 깊은 구절, 공감이 가는 구절 정도는 정리해두었다. 세월이 지나고 언젠가 다시 한 번 끄적거려볼 책 목록에 그 이름을 적어두고 지금은 그냥 이대로 넘겨야 할 책인 것 같다. 1
영문도 모르고 책을 다 읽었다!
과거에는 친족에서부터 시작하여 매우 다양한 조직체들이 물리적 강제력을 지극히 정상적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그에 반해 오늘날에는 한 특정한 영토 내에서 ㅡ 이 점, 즉 <영토>는 현대국가의 특성 중의 하나입니다 ㅡ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유일한 인간 공동체는 곧 국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에 와서, 국가 이외의 다른 모든 조직체나 개인은 오로지 국가가 정하는 범위 내에서만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날 국가는 강제력을 사용할 <권리>의 유일한 원천입니다.
요약컨대, <정치>란 국가들 사이에서든, 한 국가 내 집단들 사이에서든, 권력에 참여하려는 노력 또는 권력배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노력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훌륭한 저널리스트적 업적은 어떤 학문적 업적 못지 않게 <재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특히 저널리스트의 기사는 지시에 따라 즉시 작성되어야만 하며, 또 즉시 영향력을 발휘해야만 하기 때문에 재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학자와는 전혀 다른 집필의 조건하에서 말입니다. 저널리스트의 책임은 학자의 책임보다 훨씬 더 크며 모든 성실한 저널리스트의 책임감 역시 평균적으로는 학자의 책임감보다 낮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다는 사실은 거의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늘 그러하듯이, 그 이유는 바로 무책임한 저널리스트들의 행동이, 그 결과가 끔찍한 경우가 허다하므로, 사람들의 뇌리에 계속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행위의 최종 결과가 그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동떨어지거나, 때로는 심지어 정반대되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 아니 오히려 일반적 일이며 이것은 모든 역사가 증명해 주는 기본적 사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원래의 의도, 즉 하나의 대의에 대한 헌신이라는 원래의 의도가 포기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행위가 내적 발판을 가지고자 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정치가의 권력지향과 권력사용의 목적인 이 대의가 어떤 내용의 것이어야 하는지 라는 것은 신념의 문제입니다. 그가 헌신하고자 하는 목표는 민족 또는 인류를 지향할 수도 있으며, 사회적 윤리적 또는 문화적, 현세적 또는 종교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진보> ㅡ 이것이 어떤 의미이든 간에 ㅡ 에 대한 강한 믿음에 차 있을 수도 있고 또는 이런 종류의 믿음을 냉철히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이념>에 헌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이념에 헌신한다는 이런 생각 자체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면서 일상생활의 외적 목표에 헌신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이든 하나의 신념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표면적으로는 아무리 당당한 정치적 성공이라 하더라도 이 성공에는 사실은 피조물 특유의 공허함이라는 저주가 드리워져 있으며,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며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이면서 또한 ㅡ 매우 소박한 의미에서 ㅡ 영웅인 자만이 이렇게 불가능한 것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도 영웅도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희망의 좌절조차 견디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지금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아직 가능한 것마저도 달성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 예전에 트위터에서 고종석인가 이 책 제목의 더 옳은 번역으로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제시했던 것 같은데 해당 트윗을 찾기가 귀찮기 때문에 짧은 주석을 다는 것으로 대신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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