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타자의 욕망이나마 욕망할 수 있는 존재일까

| 2014. 2. 11. 01:09

인간 본연의 욕망, 그 1사분면의 물리학.

최근에 김어준이 어딘가에서 했던 강연이 짤방으로 만들어져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영상 속 ㅡ 사실 정지 영상 캡처를 했으니 사진 속이라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운 표현이겠지만 ㅡ 김어준은 여전히 아사하라 쇼코 같은 얼굴로 나타나 젊은이들로 추정되는 청자들에게 "인생 니 X대로 살아라"라는 골자의 이야기를 한다.

김어준이 거기서 언급하는 사람이 라캉이다. 정확히 어떻게 해석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말인데, 짧고 강렬한 문장에 담긴 의미는 표면적으로 군중심리의 존재를, 심층적으로 자신만의 욕망을 찾으라는 것이 되겠다. 당연히 김 총수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자신의 주장을 펴나간다.

전반적으로 김어준의 이야기에 반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지난 달의 어떤 경험에서 과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을 찾기 이전에, 애초에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욕망을 잘 파악이나 할 수 있는 존재들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욕망이라는 관념에 대해 본질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로 평창동 인근의 한식집을 찾았다. 식사를 적당히 마치고 가게 1층에 있는 간이 카페에서 허브차를 마시며 나온 이야기였다. 도저히 가게의 컨셉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20대의 청년들 ㅡ 나와 형 ㅡ 과는 달리 50대에 접어든 부모님과 그들의 지인들은 식당에 대해 굉장한 호평을 내렸다는 것이다. 더 디테일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라 이야기를 이 이상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그 대목에서 나는 과연 저들의 취향, 저들의 호불호는 무엇을 기반으로 어떻게 발현되는 것인지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20대와 50대라는 무시할 수 없는 세월의 벽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이 내가 평생 동안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내가 느낀 막막함은 생각보다 거대한 것이었다.

결론은 우리의 욕망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안 된다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추세가 있는데, 사실 우리는 자타를 불문하고 욕망을 파악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존재들은 아닐까 하는 힘 없는 양비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