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 late to start? Yes, maybe.

| 2014. 3. 30. 19:14

얼마 전에 온라인 상에서 위의 짤방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짤방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하며 어느 면에서는 사람들의 창작 의욕과 도전 의식을 고취시키는 긍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때로는 20대 후반에 막 접어든 나조차 시작이 너무 늦었던 것은 아닐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던 만큼 이 짤방의 원래 의도를 훼손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자못 쓰라린 진실 정도는 알고 가는 것도 그다지 나쁘진 않을 거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짤방에서 언급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검색해 정리해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자료 출처는 영문판 위키피디어다. 순서는 내 마음대로 정했다.

결국 아무 준비 없이, 아무런 과정 없이 저 나이에 저 결과물을 짠하고 만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쓰라린 진실인 것이다.

전부 다 정리를 하려다 KFC, 코카콜라, 맥도날드의 창업자 이야기는 빼기로 했다. 너무 귀찮은 데다가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정리한 자료가 많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1. 35세에 왓츠앱(WhatsApp)을 만든 잰 쿰(Jan Koum)

잰 쿰은 우크라이나 키에프 출신의 개발자다. 16살에 어머니와 친할머니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건너왔고 사회 지원 프로그램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다. 18세에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산호세 주립 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입학과 동시에 에른스트 앤 영에서 보안 관련 테스터(security tester)로 일을 시작했고, 21살인 1997년에 야후에 인프라스트럭쳐 엔지니어로 고용되었다. 에른스트 앤 영에서 만난 브라이언 액튼 ㅡ 왓츠앱의 공동 창립자다 ㅡ 과 9년 동안 같이 야후에서 일을 했고 2007년에는 야후를 떠나 1년 동안 남미를 여행했다. 페이스북에 입사 지원을 했으나 떨어졌고 2009년 아이폰을 구입해 단 7달밖에 되지 않은 앱 스토어 시장에서 블루 오션을 발견, 한 달 뒤 캘리포니아에서 왓츠앱을 설립하게 된다.

2. 35세에 테크크런치(TechCrunch)를 시작한 마이클 애링턴(Micahel Arrington)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UC 버클리를 다니다 클레어몬트 맥케나 대학에서 경제학 전공으로 졸업을 했다. 그 뒤 스탠포드 로스쿨에 입학해 25살인 1995년에 졸업하고 오멜버니 앤 마이어스 등의 로 펌에서 일을 했다. 그 뒤로는 다양한 사업에 참여를 했는데 주목할 만한 성과로는 현재 웨스트 유니언 온라인의 백엔드 시스템을 구성하는 서비스의 기초가 된 에이첵스(Achex)라는 회사의 공동 창업자였다. 참고로, 에이첵스는 퍼스트 데이터에 3천2백만 불에 매각된 회사다.

3. 35세에 판도라(Pandora)를 시작한 팀 웨스터그렌(Tim Westergren)

미네소타 출신. 미국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 중 하나인 크랜브룩 킹스우드를 다녔고 스탠포드에서 정치학 전공(political science)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12년 동안 음반 프로듀서와 작곡가로 활동하며 실력 있는 아티스트와 인디 레이블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9년에 두 명의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 판도라를 시작했다.

4. 35세에 위키피디어(Wikipedia)를 만든 지미 웨일스(Jimmy Wales)

앨라배마에서 태어난 지미 웨일스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운영하던 소규모 사립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몬테소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교육 과정 덕분에 브리태니카와 월드 북 인사이클로피디어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고. 넉넉하지 않은 집안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의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사립 고등학교를 16살에 졸업하고 20살에 어번(Auburn)에서 금융(finance)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게 된다.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금융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29살에 다니던 주식 거래 회사를 나와 보미스(Bomis)라는 남성 전용 검색 엔진(...)을 만들었으나 실패하고, 2000년 현재 위키피디어의 전신이 된 누피디어(Nupedia)를 만들게 된다.

5. 41세에 징가(Zynga)를 만든 마크 핀커스(Mark Pincus)

시카고 출신의 마크 핀커스는 시카고에 있는 프랜시스 파커 스쿨에서 ㅡ 존 듀이의 진보적인 교육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립학교 ㅡ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딴 후 라자드(Lazard)에서 금융 분석가로, 홍콩에서는 아시안 캐피털 파트너스(Asian Capital Partners)에서 부사장으로 일한 뒤 27살에 하버드 비지니스 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 뒤 꾸준히 금융과 투자와 관련된 회사에서 일하던 핀커스는 29살에 첫 창업을 시도, 단 7달 만에 3천8백만 달러에 회사를 매각하게 된다. 그 뒤 두 번의 창업을 더 시도했고 ㅡ 그 와중에 냅스터와 페이스북, 프렌드스터, 트위터의 초기 투자자로서 참여했다 ㅡ 네 번째 창업으로 2007년 7월에 징가를 설립했다.

6. 41세에 인텔(Intel)을 만든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

워낙에 대단한 사람이지만 아주 간단하게 스펙만 정리해보겠다. 어렸을 적부터 이리저리 두각을 나타내던 로버트 노이스는 그리넬 대학에서 물리, 수학 복수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ㅡ 그 유명한 파이 베타 카파 소사이어티의 소속됨과 함께 ㅡ 26살에는 MIT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필코라는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로버트 노이스는 윌리엄 쇼클리의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나 그의 회사 경영 방식에 불만을 품고 1년 만에 8명의 동료와 동반 사직,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고든 무어와 함께 41세에 인텔을 창업한다. 언뜻 보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으나 위에 언급된 고유 명사들을 하나 하나 찾다보면 무언가 숭고하기까지한 위대함을 느낄 수 있을 것.

7. 42세에 크레이그리스트(CriagList)를 만든 크레이그 뉴마크(Craig Newmark)

뉴저지 출신의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크레이그 뉴마크는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란 편인데 19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학금 덕분에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23살, 25살에 각각 학사, 석사 학위를 받고 졸업 후에는 IBM에 취직해 무려 17년 동안 회사에서 일을 했다. 41세에 찰스 스왑(Charles Schwab)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는데 거기서 처음 인터넷을 접하고 자유롭게 물건을 거래할 수 있는 공간의 아이디어를 떠올려 크레이그리스트를 만들게 되었다. 의외로(?) 가장 서민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는 크레이그 뉴마크의 2010년 재산은 40억 달러, 당시 환율로 따졌을 때 4600억 원 가량.

8. 42세에 집카(ZipCar)를 만든 로빈 체이스(Robin Chase)

위 짤방에 오른 이름 중에는 유일한 여성. 이상하게도 위키피디어에도 정보가 별로 공개되어 있지 않은 신비의 인물인가보다. 어린 시절을 중동에서 보낸 로빈 체이스는 웰레슬리 칼리지(Wellesley College)를 졸업하고 MIT 슬론 경영대학원(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을 졸업 후,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까지 가서 공부를 마친다. 집카 창업에 대한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별로 찾아볼 수가 없는데 본인은 집카의 경력보다는 버즈카(BuzzCar)의 경력을 조금 더 내세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본인 홈페이지 바이오에서 느낄 수가 있다. 재미 있는 것은 로빈 체이스 본인보다 그녀의 딸의 위키피디어 페이지가 내용이 좀 더 풍성하다는 것이다. 로빈 체이스의 딸 캐머런 러셀은 178cm의 키와 33-23-34의 괴물 같은 몸매를 가지고 있는 패션 모델이다.

물론 도전하는 모습은 대부분의 경우에서 장려할 만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무턱대고 사회가 보기에 "다소 늦은" 듯한 나이에 대단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꾸준히 준비하고 흐름을 파악하려 애쓰며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사업의 성공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견지에서 이미 우리들의 사업 시작 시기는, 어쩌면 늦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어차피 결과론적인 논리가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는 벤처와 스타트업의 세계에서는 말이다.

그러므로 마무리는 캐머런 러셀의 사진으로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