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얼핏 보면 배구에 대한 포스트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잘 보면 블로킹이 아니라 블로깅이다.
블로그를 시작해야겠다고 느낀 것은 올해 4월 무렵의 일이다.
'해야겠다'라는 거의 의무감에 가까운 느낌을 받은 것에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지난 몇 해간 온라인 상의 나의 집으로 여겨온 싸이월드의 폐쇄성에 답답함을 느끼고, 새로운 SNS의 선두 주자로 나선 페이스북은 집이라는 개념보다 실시간 전광판의 느낌이 강해 그 대안으로 블로그라는 수단을 생각해 본 것뿐이다.
그래서 갑자기 블로그를 시작하고자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했다.
아주 오래 전에 자료 저장 개념으로 만들어 둔 블로그를 살려보려고 했으나 실패, 지인의 초청장으로 여기 티스토리에 자리를 잡은 것이 벌써 약 세 달 전이다.
까불거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초기처럼 별 주제 없이 까불거리는 것에서는 벗어나 이젠 슬슬 굵직한 몇 갈래의 카테고리가 균형있게 운영되고 있다. 1
세 달쯤 블로그를 하다보니 글을 어느 정도 기계적으로 써낼 수 있는 능력도 생기고 적절한 짤방을 구하는 능력이나 방문객 수를 어느 수준으로 유지하는 능력도 생기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글의 방향성이나 글투에 있어 진부한 습관도 자라고 있다.
또한 블로깅 자체에 특정한 습성도 나타나고 있다.
신분에 맞지 않게 편하디 편한 생활을 하고 있고, 그 편함 가운데서도 더 특별한 여건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특성 때문에 많이 가려지긴 하지만, 그런 내 블로깅의 습성 중 하나는 글을 올리는 시기가 대개 주말 무렵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이 글의 우측으로 보이는 달력은 민망하리만큼 대부분 굵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지만, 사진만 덩그러니 ㅡ 대부분 수많은 형용사를 수반하고 있긴 하지만 ㅡ 올라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보면 어느 정도 그런 경향성이 드러날 것이다.
블로그라고 하는 것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비해 실시간적인 기능이 그렇게 중요하게 부각되는 매체가 아니다.
특히 인터넷에 화제거리가 뭔가 떴다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방문객 수를 늘리는 것에 치중하는 그런 광고·홍보용 블로그가 아닌 내 까불로그에서 그와 같은 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나 보고 책이나 읽고 음악이나 들으면서 그에 대한 나의 졸렬한 감상을 적는 것이 대부분인 블로그에서, 게다가 최신작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나의 거룩한 고집에 힘입어 더더욱, 실시간성은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되었다.
실시간성이 배제된 블로깅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비실시간적 SNS의 가장 훌륭한 점은 지나치게 기분에 치우친 일종의 '싸지름'을 방지하는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감성의 폭풍에 휘말려 주체 없이 휘청이는 글을 끄적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2
여기서 실시간 SNS와 비실시간 SNS는 분기점을 가지게 된다.
전자의 경우, 모두 다 부질없는 것이라며 폭풍을 잠재우는 것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그 복잡한 감정의 결과물을 네트워크에 올릴 때는 대개 문제가 발생한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보면 손발을 없애버리고 싶은 감정이 지난 날의 그 이해할 수 없을만큼 불필요하게 진지했던 감정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엔 역시 수기로나마 감정의 배설물을 토해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네트워크에 나타나기 전에 창작자 스스로가 되새김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제공한다.
잔뜩 부풀어 오른 감정의 풍선은 그 시간 사이에 바람이 모두 빠져 쭈글쭈글해지고, 자연히 감정의 찌꺼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같은 논리의 연장선 상에서, 꼭 감정적으로 쓰게 된 글이 아닌 계획적으로 의도를 가지고 써놓은 글이 있더라도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조금은 더 정제된 결과물을 내놓게 되는 경향도 생긴다.
항상 더 나은 방향으로 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 써놓은 글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다보면 명확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나 불필요하게 수식어구가 많이 들어간 구절, 단순히 문법적으로 잘못된 문장 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도 고쳐보고 저렇게도 고쳐본다.
실시간으로 글을 올리는 경우에도 글을 되새기는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이처럼 날 단위의 숙성 기간을 거치는 것이 평균적으로 더 바람직한 글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에 되도록이면 영속성을 갖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거나 처음 글을 쓴 시점과 글을 올리는 시점 사이에 새롭게 든 생각이 있어 글에 살을 붙이거나 ㅡ 사족이 될 가능성도 다분하지만 ㅡ 쓰기로 생각해놓고 막상 글에 포함하는 것을 잊었던 것을 다시 떠올려 원글에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특성이겠다.
실시간이 아닌 블로깅에는 썩 좋지 않은 점도 존재한다.
가장 큰 단점은 말 그대로 실시간이 아니라는 것.
뭔가 몇 분 내로, 몇 시간 내로, 오늘 내로 올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지는 글들을 올릴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실시간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이 단점이라고 하는 것은 다소 역설적으로 보이는 만큼 단점이라고 단정 짓기가 어렵다.
총점을 따져봤을 때 나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유래한 시간차 블로깅은 은근히 괜찮은 전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타자를 두드려가며 나의 잡생각을 네트워크 상에 게시할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오기까지는 이 시간차 블로깅의 방식을 어느 정도 계속 유지하게 될 것 같다.
나중에 여행이라도 가게 된다거나 시민 기자가 된다거나 하는 특별한 상황이 닥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글 역시 시간차 블로깅을 통해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밝히는 이 글의 작성 시각은 2011년 7월 14일 오후 2시 57분.
블로그를 시작해야겠다고 느낀 것은 올해 4월 무렵의 일이다.
'해야겠다'라는 거의 의무감에 가까운 느낌을 받은 것에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지난 몇 해간 온라인 상의 나의 집으로 여겨온 싸이월드의 폐쇄성에 답답함을 느끼고, 새로운 SNS의 선두 주자로 나선 페이스북은 집이라는 개념보다 실시간 전광판의 느낌이 강해 그 대안으로 블로그라는 수단을 생각해 본 것뿐이다.
그래서 갑자기 블로그를 시작하고자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했다.
아주 오래 전에 자료 저장 개념으로 만들어 둔 블로그를 살려보려고 했으나 실패, 지인의 초청장으로 여기 티스토리에 자리를 잡은 것이 벌써 약 세 달 전이다.
티스토리의 블로깅 툴은 굉장히 인체공학적이라 오래 눌러앉아 있을 것 같다.
까불거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초기처럼 별 주제 없이 까불거리는 것에서는 벗어나 이젠 슬슬 굵직한 몇 갈래의 카테고리가 균형있게 운영되고 있다. 1
세 달쯤 블로그를 하다보니 글을 어느 정도 기계적으로 써낼 수 있는 능력도 생기고 적절한 짤방을 구하는 능력이나 방문객 수를 어느 수준으로 유지하는 능력도 생기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글의 방향성이나 글투에 있어 진부한 습관도 자라고 있다.
또한 블로깅 자체에 특정한 습성도 나타나고 있다.
신분에 맞지 않게 편하디 편한 생활을 하고 있고, 그 편함 가운데서도 더 특별한 여건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특성 때문에 많이 가려지긴 하지만, 그런 내 블로깅의 습성 중 하나는 글을 올리는 시기가 대개 주말 무렵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이 글의 우측으로 보이는 달력은 민망하리만큼 대부분 굵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지만, 사진만 덩그러니 ㅡ 대부분 수많은 형용사를 수반하고 있긴 하지만 ㅡ 올라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보면 어느 정도 그런 경향성이 드러날 것이다.
블로그라고 하는 것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비해 실시간적인 기능이 그렇게 중요하게 부각되는 매체가 아니다.
특히 인터넷에 화제거리가 뭔가 떴다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방문객 수를 늘리는 것에 치중하는 그런 광고·홍보용 블로그가 아닌 내 까불로그에서 그와 같은 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나 보고 책이나 읽고 음악이나 들으면서 그에 대한 나의 졸렬한 감상을 적는 것이 대부분인 블로그에서, 게다가 최신작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나의 거룩한 고집에 힘입어 더더욱, 실시간성은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되었다.
거룩한 고집은 개뿔이고 개고집.
실시간성이 배제된 블로깅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비실시간적 SNS의 가장 훌륭한 점은 지나치게 기분에 치우친 일종의 '싸지름'을 방지하는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감성의 폭풍에 휘말려 주체 없이 휘청이는 글을 끄적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2
여기서 실시간 SNS와 비실시간 SNS는 분기점을 가지게 된다.
전자의 경우, 모두 다 부질없는 것이라며 폭풍을 잠재우는 것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그 복잡한 감정의 결과물을 네트워크에 올릴 때는 대개 문제가 발생한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보면 손발을 없애버리고 싶은 감정이 지난 날의 그 이해할 수 없을만큼 불필요하게 진지했던 감정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엔 역시 수기로나마 감정의 배설물을 토해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네트워크에 나타나기 전에 창작자 스스로가 되새김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제공한다.
잔뜩 부풀어 오른 감정의 풍선은 그 시간 사이에 바람이 모두 빠져 쭈글쭈글해지고, 자연히 감정의 찌꺼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같은 논리의 연장선 상에서, 꼭 감정적으로 쓰게 된 글이 아닌 계획적으로 의도를 가지고 써놓은 글이 있더라도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조금은 더 정제된 결과물을 내놓게 되는 경향도 생긴다.
항상 더 나은 방향으로 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 써놓은 글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다보면 명확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나 불필요하게 수식어구가 많이 들어간 구절, 단순히 문법적으로 잘못된 문장 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도 고쳐보고 저렇게도 고쳐본다.
실시간으로 글을 올리는 경우에도 글을 되새기는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이처럼 날 단위의 숙성 기간을 거치는 것이 평균적으로 더 바람직한 글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에 되도록이면 영속성을 갖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거나 처음 글을 쓴 시점과 글을 올리는 시점 사이에 새롭게 든 생각이 있어 글에 살을 붙이거나 ㅡ 사족이 될 가능성도 다분하지만 ㅡ 쓰기로 생각해놓고 막상 글에 포함하는 것을 잊었던 것을 다시 떠올려 원글에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특성이겠다.
실시간이 아닌 블로깅에는 썩 좋지 않은 점도 존재한다.
가장 큰 단점은 말 그대로 실시간이 아니라는 것.
뭔가 몇 분 내로, 몇 시간 내로, 오늘 내로 올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지는 글들을 올릴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실시간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이 단점이라고 하는 것은 다소 역설적으로 보이는 만큼 단점이라고 단정 짓기가 어렵다.
총점을 따져봤을 때 나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유래한 시간차 블로깅은 은근히 괜찮은 전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타자를 두드려가며 나의 잡생각을 네트워크 상에 게시할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오기까지는 이 시간차 블로깅의 방식을 어느 정도 계속 유지하게 될 것 같다.
나중에 여행이라도 가게 된다거나 시민 기자가 된다거나 하는 특별한 상황이 닥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글 역시 시간차 블로깅을 통해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밝히는 이 글의 작성 시각은 2011년 7월 14일 오후 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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