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시드는 과정

| 2011. 7. 8. 23:42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타인의 심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지난 글에서 밝힌 바 있다.
내가 가진 정신적 능력이 이처럼 평균 이하에 머무는 것은 사실 이 뿐만이 아니다.
바로 위에 밝힌 것처럼 비교적 바람직하지 않은 성향의 능력 결여도 있지만 반면에 그런 가치 평가가 애매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두려움을 느끼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더불어 아주 잔인하거나, 징그럽거나 엽기적인 대상을 접했을 때 그 대상을 자연스레 피하는 능력 또한 떨어진다.
사실은 은근히 즐기기까지 한다.

이렇게 끔찍하고 잔인한 사진을 봐도 내 머리 속엔 상큼한 딸기향, 사과향이 떠오를 뿐이다.


이런 점을 종합하여 몇몇 사람들은 내게 사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하다는 평을 내리기도 한다.
한 때는 그와 같은 매도에 나 자신도 어느 정도 수긍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런 냉혈한이 될 수 없다!
그 결정적인 증거는 내가 사랑하기를 좋아하고 또 사랑받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각주:1]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로 이 인간의 영원불멸의 주제인 사랑에 대해 참 많이도 생각한 것 같다.
당시 상황 탓을 많이 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내가 취미로 쓰기 시작한 첫 글 또한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각주:2]
그 이후로 나는 사랑에 관한 글을 몇 편 더 쓰고, 사랑에 관한 글도 몇 편 더 읽었다.
그 덕에 '독일인의 사랑'이나 '개선문' 같은 책도 보고, 알랭 드 보통이라든지 F.스캇 피츠제럴드 같은 이름과도 친숙해졌다.
진지한 로맨스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 중에 하나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너는 내 운명'이나 '클로저' 정도가 당장 떠오르는, 질 좋은 사랑에 관한 영화다.

사랑을 다른 각종 매체를 접하고, 스스로도 그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다보면 그 사랑을 직접 겪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성적 취향은 이성으로 향해 있다.
그 말인즉슨 내 사랑의 대상은 이성이라는 뜻인데, 아니 이 시대에 섣부른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여성이라고 해야겠다.
사랑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 문장을 기준으로 앞에서나 뒤에서나 등장하는 사랑은 모두 남성과 여성이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전제로 교감하는 것으로 한정짓자.
본론으로 돌아가, 나는 나의 사랑에 필수적인 요소인 그 여성을 찾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했다.

내 삶의 필수 요소!


어떤 사람들은 그 시간들을 낭비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시간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절대 낭비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사랑에서 직접적인 경험이 갖는 중요성은 언젠가 다른 글에서 밝히겠다.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한 결과, 나는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일반적이고 평범한 경험은 적었다고 할 수 있으나 나는 상대방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기도 했고, 반대로 나 혼자서 상대방을 사랑해본 적도 있었다.
내가 어떤 식으로 사랑에 빠져가는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게끔 만드는지,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랑은 어떻게 거절하는지, 사랑으로 받은 상처는 어떤 식으로 제어하는지를 알았다.
나는 나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적으로 신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에 대해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 시드는 과정이다.

발단은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으면서였다.
지난 번에 쓴 이 책에 대한 포스팅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이 책의 중반부를 굉장히 지루하게 느꼈다.
책의 중반부라함은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런 저런 갈등과 마찰을 겪으면서 서서히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가는 부분이다.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었던 책이 왜 갑자기 이토록 지리멸렬하게 느껴지는지 고민했다.
답은 간단했다.
작가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빠져들어가는 식인 알랭 드 보통의 서술에 내가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범지구적인 범위의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알랭 드 보통의 글에 내가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시드는 과정을 겪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첫째로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둘째로 과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셋째로 그 사랑이 강제적인 수단에 의해 싹둑 끊어지면 안 된다.
내가 여태까지 만난 사람들을 돌이켜보면 1번 조건을 만족시키는 여자는 여럿 있었으나 2번 조건에서 거의 1~2명만 남게 되고 그마저 3번 조건에서 모두 탈락한다.
결국 내 사랑은 단 한 번도 '시든' 적이 없었다.

사랑이 시든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틀림없이 기분 나쁜 느낌일 것이다.
마치 구덩이에 고인 물이 서서히 썩어가는 것처럼 서서히 그러나 점점 더 고약해져가는 느낌이겠다.

그럼 사랑은 왜 시들까?
아마 그 시작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리라.
가벼운 말 실수나 우연히 튀어나온 경거망동 같은 사소함 말이다.
상대방은 그 사소함을 사소함 그 자체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당분간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그 사소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사소함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만큼 상대방은 그 사소한 틀어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꼭 지난 번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비슷한 류의 사소함일 것이다.
역시 넘어간다.
다시 마주친다.
또 넘어간다.

사소함은 점점 '사소하지 않음'이 되어간다.
바위를 뚫는 물방울처럼, 똑똑 떨어지는 사소함의 물방울은 바위와도 같이 단단했던 사랑에 조금씩 흠을 낸다.
흠은 점점 커지고 그만큼 두 사람이 받는 마음의 상처도 커진다.

아아, 청돌은 제외.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이런저런 사랑과 관련된 매체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사랑이 시든다는 것은 대체로 위에서 서술한 바와 비슷한 것 같다.[각주:3]
만약 나의 추측이 사실과 대체로 비슷하다면 내가 사랑이 시드는 과정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유는 자명해진다.
나의 사랑은 처음부터 시들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 완벽주의적인(이라고 쓰고 개똥철학이라 읽는) 면을 추구하는 나는 이제는[각주:4], 처음부터 어느 정도 미래가 내다보이는 만남이 아니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적당히 맘에 드는 대상이 나타나면 꾸준히 만나보면서 그 사람을 잰다.
'잰다'는 표현이 비열하다고 느껴질 수 있으므로 그 의미를 정확히 밝혀두자면, 나의 '잰다'는 제대로 된 만남을 가지기 전에 잠재된 갈등 요소를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나는 사소한 갈등도 용납하기 힘들다.
흔히들 말하는 연인들 간의 '싸움'이란 내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두 영혼 사이에 마찰이 존재한다면 그런 만남은 처음부터 시작되면 안 될 성격의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그 사람을 진지하게 만나기 전에 나의 톱니바퀴와 그 사람의 톱니바퀴를 잘 돌려가며 서로 어긋나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 과정을 참지 못한다면 만약 그 사람이 정말 나와 딱 맞아 떨어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정말 나와 맞는 짝이라는 사실은 영영 깨닫지 못할 것이므로 그렇게 아쉬워할 것도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완벽하게 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남을 가지면서 예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다반사다.
갈등의 기미가 보이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이든 내가 양보할 수 있는 문제라면 양보하고, 단 하나의 예외라도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결점에 도달하고 넘어간다.
이런 갈등 해소 방법은 대부분의 경우에 유용하게 쓰이나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면 산산조각 나고마는 '모 아니면 도'의 방법이다.
결국 나의 사랑은 시들지 않는다.
나의 사랑은 그 기원 자체가 겉으로는 무척이나 튼튼해보이나 위기의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단숨에 뿌리부터 뽑혀버릴 수 있는 녀석인 것이다.

서서히 시드는 사랑과 단숨에 뽑히는 사랑.
시들지 않으면서 뿌리도 튼튼한 사랑이 있다면 당연히 그런 사랑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선택지가 저 두 개 뿐이라면 그래도 나는 주저없이 후자를 고를 것이다.
자존심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이 참 나랑 비슷해서 더 정감이 가는 것일까.
  1. 물론 이 문장 또한 어떻게든 끼워 맞추면 나를 사이코패스로 몰고 갈 수 있겠지만 말이다. [본문으로]
  2. 제목은 데빈 타운센드의 밴드 Strapping Young Lad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본문으로]
  3. 만약 저런 것을 두고 사랑이 시든다고 하는 게 아니라면 내 글은 완전 말똥 쓰레기 같은 것이 된다! [본문으로]
  4. '이제는'이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과거의 나의 다소 번잡한 만남을 트집 잡을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그 과거는 그냥 현재의 내공을 쌓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하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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