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scent

| 2012. 1. 3. 00:37

아아, 한 끝 차이로 극찬을 받을 수 있는 단계에서 미끄러졌다.
하지만 모든 걸 그룹이 소녀시대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는 김재경이 정말 좋다!


영화 '디센트'는 여러 모로 디센트(decent)한 영화다.
우선 상당히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아주 탄탄한 연출을 보여준다.
descent라는 단어는 우리 말로 하강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땅을 향해 뚫려 있는 동굴을 탐험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베리드'나 '127시간' 같이 극도로 한정된 공간을 가지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그 어두침침한 동굴 하나만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촬영이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실제 동굴에서의 촬영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제작진이 스튜디오에 동굴 세트장을 차려 촬영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세트장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절대 전경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모험은 시도하지 않았다.
항상 카메라의 포커스를 인물의 시야를 중심으로 두거나 또는 어떠한 한 대상에 맞춤으로써 정말 그럴싸한 화면을 그려냈다.
적외선 모드의 비디오 카메라까지 동원하는 독특한 센스는 충분히 칭찬 받을 만한 점.


공포 영화라고는 보기 힘든 스릴러 '디센트'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해야 질 좋은 스릴을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썩 훌륭한 방법으로 접근한 영화다.
사람의 시야각이 가져다주는 한계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클리셰는 피해갈 수 없었지만 참 정말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 놀랄 만한 요소를 잘도 심어놨다.
무슨 영화를 보든 잘 놀라지 않는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는 한 5번 정도 깜짝 깜짝 놀랐던 것 같다.
여기에 훌륭한 동굴 세트장이 만들어내는, 고립된 공간에 대한 폐쇄 공포감과 사람과 사람 간의 갈등, 그리고 사람과 괴물과의 갈등이라는 이중적 갈등 구조를 더해 탄탄한 긴장의 벽을 형성한다.
일이 안 좋게 돌아갈 수 있는 요소를 이야기 곳곳에 기계적으로 배치해 자연스러운 '엎친 데 덮친 격'의 형국을 조성한다.
기본적으로 뭔가 마음이 깝깝하기 그지 없는데 거기에 대체 뭐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까지 더해지니 이런 스릴을 즐기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설상가상이요, 깜짝 깜짝 놀라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금상첨화다.

아무래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 나오는 영화일 경우, 그 생명체에 대한 묘사력이 떨어져서 영화를 망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디센트'는 그런 부끄러운 영화 목록에는 절대 오르지 않을 영화다.
'디센트'에 나오는 크로울러라고 불리는 동물 속 생명체들은 '데드 캠프' 속 좀비들 같은 싸구려 분장을 하고 있지 않다.
몹시 끈적일 것 같은 질척한 점액질의 피부, 퇴화가 거의 완료된 것 같은 얼굴의 생김새, 어두운 동굴을 안방처럼 편하게 거니는 유유한 자태 등 자칫 놓치기 쉬운 디테일들 ㅡ 게다가 한 번 놓쳐버리면 영화의 몰입도를 주체할 수 없이 떨구는 ㅡ 을 잘 잡았다.

마지막으로 '디센트'가 디센트한 부분은 캐스팅.
엄청난 미인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준수한 여인네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의 필사적인 몸부림에서 느껴지는 묘한 매력,  캐스팅 담당자나 감독이 노린 부분임이 분명하다.

이게, 이 포스터만 보면 대체 내가 무슨 거짓말을 치고 있는 건지 나조차 헷갈리지만 실제 화면에서는 상당히 육감적인 여성들이다. http://harogi.tistory.com/241


자, 그렇다면 디센트가 미끄러진 부분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이 영화에 대해서 좋은 인상만을 가지고 싶은 심정이기에 단점은 간단하게 언급하고 평을 끝내련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조금의 잔인함과 징그러움인데 이 부분에서 저예산의 한계를 드러냈거나, 또는 대중성과의 타협을 보지 않았나 싶다.
다르게 말하면, 그 잔인함과 징그러움이 왠지 모르게 장난스럽고 나와는 관련이 없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괴물들의 실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중반 이후부터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필연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그 긴장감의 하락을 어떻게 잘 막을 수는 없었는지.
어쩌면 중반부까지의 긴장감이 상한가를 치고 있었기에 체감하는 하락 폭이 더 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자들이 너무 싸움을 잘 한다.
크로울러들은 진짜 눈이 안 보이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게 하는 움직임을 자꾸 보여준다.

결정적으로 카타르시스가 굉장히 불분명하다.
이 영화는 이런 식으로 끝나면 안 됐다.
그렇기 때문에 속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는데 ㅡ 물론 내가 속편을 보지는 않았지만 ㅡ 이미 첫 이야기가 끝나버린 상황에서는 절대 해결되지 못할 카타르시스들이 최소한 2개는 덩그러니 남겨지고 말았다.
결정적인 한 끝은 바로 이 스토리에서 기인하는 바.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훌륭한 스릴러였다.
내가 쓰는 글은 도무지가 재미가 없어서 볼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다음의 만화 평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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