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ball

| 2012. 2. 23. 22:17

영화 '머니볼'은 단단하고 진중한 야구공이기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친구, 빌리 빈의 이야기다.
이 영화의 대단한 점은 지독하게 남자만 나오는 스토리로 매우 재밌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http://veryaware.com/2011/09/the-truth-about-moneyball


'머니볼' 책을 읽었던 것이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라 확신은 못하지만 이 정도면 원전의 분위기를 충분히 잘 살렸다고 본다.
야구에 대해서 문외한이거나 당시 메이저리그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거나 한다면 영화의 디테일을 전부 다 잡아내기는 힘들겠지만 뭐 그런 사람들에게도 그럭저럭 추천할 만하다.
영화에서 책의 내용을 전부 가져오지는 않았고 빌리 빈이라는 개인에 더 높은 비중을 두어 이야기의 구도를 살짝 각색했는데 대단히 좋은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한 메이저리그 팀의 단장이면서 동시에 사랑스러운 딸을 두고 있는 한 명의 아버지로서의 빌리 빈을 이보다 더 잘 담아낼 순 없다.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하기까지한 브래드 피트의 열연이 빌리 빈의 상황에 관객들을 한껏 몰입시키는데, 머리털이 숭숭 빠질 것 같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운동 선수를 이끄는 리더로서 가끔은 똥폼을 잡아야만 하는 ㅡ 무슨 놈의 똥폼을 이렇게 잡나 싶을 정도로 과도한 액션들이 많은데 브래드 피트가 연기했기 때문일까, 멋있고 난리다 ㅡ 단장 빌리 빈과 사적인 영역에서는 똥폼을 잡기는 커녕 전 아내와의 관계, 딸과의 관계에서 애를 먹는 아버지 빌리 빈을 동시에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공에서의 멋과 대비되는 사에서의 꼬질꼬질함이라는 점에서 약간 '땡큐 포 스모킹'이 떠오르기도 한다.

여기서 잠시 빠지는 이야기를 하자면, 그러나 이런 류의 사람은 모티베이션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상사는 비록 일의 실적은 좋을지 모르나 우리의 삶을 매우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저것이 자신이 닮아야 할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빌리 빈의 목적이 아닌 수단만을 좇을 경우 우리의 삶이 어떤 식으로 피폐해져 갈지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으리.
물론 단장이라는 직업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빌리 빈의 통솔 방식이 방법론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변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지도자는 우리 삶에서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세이버메트릭스 너드의 전형인 피터 브랜드라는 캐릭터가 빌리 빈의 영향 하에 조금 더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의 변화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머니볼'이 좋은 영화일 수 있는 이유는 빌리 빈과 브래드 피트를 둘러싼 연출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야구 계의 비하인드 신을 감각적인 화면 구사로 생생하게 묘사한 것은 각본의 승리이자 편집의 승리다.
정말 미시적인 관점에서 야구 계의 면면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가 넘친다.
야구 시즌의 한 사이클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선수들과 감독 그리고 단장과 구단주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은 사람들인가, 클럽하우스에서, 덕아웃에서, 관중석에서, TV에서 바라보는 야구는 어떤 느낌인가, 빌 제임스를 위시한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두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났으며 그것이 야구라는 스포츠에 시사했던 점은 무엇인가 등등 우리가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할 수도 없는 주제들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은 영화다.

영화의 엔딩 신은 진짜 명장면이다.
핵심을 찌르는 가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빌리 빈의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온 몸으로 받아 싸워 이겨야 하는 그 빌리 빈의 심정.
브래드 피트의 눈.
"such a loser"의 저 눈.
눈물이 가득 고여 있으나 끝내 눈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저 눈.
이 모든 요소를 저 출렁이는 눈물 하나에 담아내는 브래드 피트.

가슴이 울린다.
쩌렁쩌렁.


하지만 칭찬 일색으로 평을 끝내기 전에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과연 이 영화는 실제를 그대로 살린 다큐멘터리적 영화로서 연출에 성공한 것일까?
아니면 실제를 바탕으로 한 허구적 스토리로서 연출을 성공한 것일까?
메이저리그를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나름 야구 덕후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나의 관점에서 긍정적인 대답을 줄 수 있는 질문은 당연히 후자의 것이다.
사실의 재현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영화의 연출은 손가락질을 받을 수준으로 엉망진창이다.

실제 아트 하우와 빌리 빈의 모습. http://www.awesomestories.com/assets/art-howe


아트 하우 감독은 이런 잘못된 연출의 가장 큰 피해자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책 '머니볼'과 영화 '머니볼'에서 묘사된 자신의 모습에 굉장한 불쾌감을 표시한 바 있는데 내가 보더라도 영화에서 묘사된 아트 하우의 말도 안 되는 고집은 거의 명예훼손감이다.
인터넷 검색 도중에 아주 훌륭한 리뷰를 발견했는데 전반적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거의 다 담겨 있는 포스트다.
아트 하우 감독은 토니 라루사의 저물어가는 오클랜드 에이스를 이어받아 7년 간의 에이스 감독 생활 중 팀을 세 번이나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게다가 그의 감독 성향은 굉장히 팀 친화적인 것이었고, 김형준의 명품 프리뷰에도 이런 점이 언급된 적이 있다.
샤프하고 명민했던 한 시대의 감독이 고집불통 똥자루로 전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야구 팬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좌측이 실제 디포디스타, 우측은 영화 속 브랜드. http://thebiglead.com/index.php/2010/08/06/yardwork-everyones-injured-moneyball-is-already-hilarious


그런가하면 폴 디포디스타의 가상 캐릭터인 피터 브랜드는 반지의 제왕을 방불케하는 판타지적 캐릭터다.
예일이 아닌 하버드에서 직접 야구와 풋볼 선수[각주:1]로 활약했던 폴은 영화 속 조나 힐의 돼지 숫자 덕후와는 영 딴 판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다부지고 건강한 체격의 폴은 하버드 경제학 학위를 달고 졸업을 했으나 처음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스카우터 노릇을 할 때에도 학교 이름을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괴짜처럼 보이기 싫어 자신의 학위를 스스로 깔봤다고 한다.
영화든 책이든 '머니볼'에서 묘사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허구적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호구 같아 보이던 폴 디포디스타는 2004년 31세의 나이로 LA 다저스 단장으로 취임하게 되고, 2006년 샌디에고 파드레스의 스페셜 어시스턴트로, 2008년에는 단장이 되었으며 2010년 11월 8일부로 뉴욕 메츠의 선수 관리 및 스카우팅 분야의 담당자가 되었다.
소심한 뚱돼지의 반란이라기에는 너무 화려한 경력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화려한 경력을 고려했을 때 소심한 뚱돼지의 모습은 완전 픽션이라는 뜻이겠다.

또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단장으로 나온 마크 샤피로다.
다소 어리숙하고 꼭 빌리 빈의 농간에 감쪽 같이 속아 넘어가는 인물로 묘사된 마크 샤피로는 사실 2000년대 이후 가장 뛰어난 단장 중의 하나로 평가 받는 인물로 전 단장인 존 하트가 이끌던 전성기 클리블랜드의 끝물을 이어 받아 팀의 리빌딩에 정력을 쏟아바쳤다.
스포팅 뉴스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단장에 두 번이나 뽑혔고 2010시즌이 끝난 후 팀의 사장으로 승진했다.
성적은 훌륭했지만 과도한 투자로 비틀거리던 팀을 겨우 살려놓은 클리블랜드의 영웅은 '머니볼'에서 그 재기를 모두 잃고 남의 말에 귀나 팔랑거리고 훌륭한 인재도 하나 못 알아보는 그런 두더지 같은 사람으로 전락했다.

두더지. http://kcm.co.kr/ency/animal/022.html


'머니볼'은 인물 묘사에만 허술했던 것이 아니다.
메이저리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머니볼'이라는 영화만 봤을 때 받게 되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인상은 실제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오클랜드 에이스라는 팀은 이미 당시에 가장 잘 나가는 팀 중에 하나였다는 것이다.
비록 빌리 빈이 처음 지휘권을 잡은 1998년에는 그저 그런 팀이었지만, 다음 해 승률을 약 8푼 끌어올렸고 2000년에 지구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인 2001년에도 무려 102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그러니까 영화 시작, 양키스에게 패배를 당하고 리그 챔피언십 진출이 좌절된 오클랜드는 이미 그 때 리그 최강의 팀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물론 2001시즌이 끝나고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제이슨 지암비, 쟈니 데이먼, 제이슨 이스링하우젠이 모두 FA로 팀을 떠나기는 한다.
하지만 쟈니 데이먼의 경우는 에이스 운영진 측의 명백한 계약 실패임이 분명하고 사실 에이스에서의 성적은 .256/.324/.363으로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비록 그가 보스턴 레드 삭스로 건너간 후에 올린 성적은 훌륭한 것이었지만 오클랜드 에이스가 데이먼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명실상부한 팀의 에이스 제이슨 지암비가 로스터에서 빠진 것은 상당한 타격이었겠으나 에릭 차베즈와 미구엘 테하다 같은 선수들의 포텐셜이 무지막지하게 터지던 상황에서 그의 공백이 팀의 전력에 심각한 타격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의 오클랜드 에이스는 영건 3인방이라고 불리는 당대 최강의 1,2,3펀치 선발 투수 ㅡ 팀 허드슨, 마크 멀더, 배리 지토 ㅡ 를 보유하고 있었다.
단순히 이들이 모두 로테이션에 있었던 ㅡ 부상으로 빠진 시기와 콜업된 시기 따위는 모두 무시하고 ㅡ 5년 간 세 명이 오클랜드를 위해 올린 승수만 더해도 243승이다.
한 사람이 매 시즌마다 평균 15.6승의 기록을 올렸다는 수치가 나온다.

이 셋은 정말 전설에 가까웠다. http://bleacherreport.com/articles/293258-the-decade-in-baseball-part-i-the-teams


정리하면 2002시즌 오클랜드 에이스의 로스터는 여전히 리그를 지배할 수 있는 수준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른 말로 2002시즌을 준비하던 빌리 빈의 역할은, 심하게 말하자면, 다 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리는 정도의 것이었다.

영화에서 외인구단의 느낌을 팍팍 살리면서 스포트라이트를 열심히 주던 선수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스링하우젠이라는 걸출한 마무리가 팀을 떠난 것은 분명한 타격이었겠으나 영화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인상으로 나온 채드 브래드포드 ㅡ 영화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족을 붙이자면 그 기괴한 언더스로우 자세로 공을 뿌리던 투수다 ㅡ 는 이미 2001년에 ERA+ 163을 기록하면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 유망주였다.
전통적인 성적을 고려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의 2001시즌 성적은 36.2이닝 34삼진 6볼넷 방어율 2.70.
굳이 누가 그를 재발견하고 자시고 할 필요 없이, 이미 그가 2002시즌에 보여준 선전은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좌측이 배우 크리스 프랫, 우측이 야구선수 스캇 해티버그. http://blog.moviefone.com/2011/09/21/scott-hatteberg-moneyball-interview-facts-fiction


어디 그 뿐인가.
영화에서 선수 중에서는 가장 하이라이트를 많이 받은 스캇 해티버그는 비록 2001시즌을 부상으로 망쳐버리긴 했으나 1991년 드래프트에서 보스턴에 의해 1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훌륭한 선수였고 이미 보스턴에서의 활약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보인 선수였다.
더 재미 있는 사실은 20연승이 좌절되려고 하던 그 순간에 대타로 등장해 극적인 홈런으로 20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던 그 순간에, 해티버그는 이미 그 시즌 139번째 경기를 출전하고 있었다.
스캇 해티버그는 2002시즌 텍사스와의 개막전에서부터 주전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간간히 1루수로 출전하던 그는 6월 1일에 되어서야 1루 수비를 전담하게 되었다.
그의 출전 시간을 두고 아트 하우 감독과 갈등이 있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픽션에 불과하다.
해티버그는 하우 감독을 "자신의 가장 큰 지지자(a huge supporter of mine)"라고 묘사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해티버그의 숨겨진 잠재성을 뽑아낸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냐고?
혹자는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보스턴에서 보냈던 7년, 오클랜드에서의 4년, 그 후 신시내티에서의 3년을 비교해보면 사실 오클랜드에서의 성적이 가장 안 좋은 편이다.

우측이 진짜 제레미 브라운이다. http://www.sfgate.com/cgi-bin/article.cgi?f=/c/a/2004/03/12/SPGD45JCSR1.DTL


영화의 후반부에서 자신이 홈런을 친 줄도 모르고 냅다 베이스 러닝을 하는 돼지 타자를 기억하는가?
그 돼지 타자의 이름은 제레미 브라운으로 책 '머니볼'에서는 영화에서보다 좀 더 많은 포커스를 받는 선수다.
브라운은 2001년 드래프트에서 레드 삭스에 의해 19라운드로 지명을 받지만 계약에는 실패한다.
2002년 드래프트에서 빌리 빈은 이 선수를 1라운드 35번 픽으로 지명하여 다른 팀 관계자들을 당황시키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1라운드 픽으로 뽑힌 제레미 브라운은 마이너 생활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다가 메이저리그에는 고작 5경기 11타석에 들어선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오클랜드가 2001년 FA의 결과로 많은 보상 픽을 받긴 했고 신인 드래프트라는 것이 그 이후의 계약 조건에 대한 것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단순 비교를 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5경기 11타석에 들어선 제레미 브라운 이후에 뽑힌 선수들을 단순 나열하더라도 조이 보토, 존 레스터, 브라이언 맥캔, 커티스 그랜더슨 등이 있다.
누가 뭐래도 최근에 가장 잘 나가는, 이제는 커리어의 전성기에 다다른 선수들이다.

과연 빌리 빈의 세이버메트릭스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게임의 재구성은 없다고 단정짓던 나레이션은 그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2002시즌이 끝나고 보스턴 레드 삭스의 단장직 제안을 거절하고 오클랜드 에이스에 남은 빌리 빈은 이듬 해에 다시 한 번 지구 1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르지만 보스턴 레드 삭스에게 시리즈 스코어 3 대 2로 패배한다.
2006년에 플레이오프에 다시 진출한 오클랜드는 미네소타를 디비전 시리즈에서 꺾지만 리그 챔피언십에서 디트로이트에게 4연패하면서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된다.
그 이후 오클랜드의 지구 순위는 3-3-4-2-3.
위에서 내가 조목조목 반박한 빌리 빈의 선수 운용까지 고려한다면 무엇이 그를 이토록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되게 만드는지 자연스레 의문이 생기게 된다.
과연 무엇 때문에?

과연 무엇 때문에?


빌리 빈이 메이저리그에 남긴 족적은, 이른바 머니볼이라고 하는 효율적인 계약 위주의 구단 운영의 교과서를 쓰고 세이버메트릭스라는 기존 야구 분석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전복시키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실현화한 것에 있다.
숫자 놀음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던 세이버메트릭스는 빌리 빈 이후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주류 야구 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각종 수학자들이 야구 성적 계산에 뛰어들었고 걸출한 재야의 고수(라고 쓰고 야구 덕후라고 읽는다.)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기존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적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밝혀지고 새롭게 계산되는 수치들이 선수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그리고 그 선수의 진짜 가치를 평가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선수의 몸값에 지나친 소비를 하는 것 대신, 효율적인 유망주 운용과 빠른 장기 계약을 통해 스몰 마켓 팀도 돈을 마구 뿌리는 강팀의 틈바구니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팀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내가 그토록 열렬히 응원하는 탬파베이 또한 빌리 빈의 머니볼 모델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리그 최하위의 수렁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벽을 뚫은 자는 필연적으로 피 범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영화 중 대사는 정확히 빌리 빈을 위한 구절이다.
그는 처음으로 100여년 동안 굳건히 쌓여 있던 근대 야구의 벽을 뚫었다.
빌리 빈을 통해 야구는 현대적인, 내 생각에 현존하는 스포츠 중에 가장 구체적이고 자세하며 과학적인 스포츠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머니볼의 개념은 단순히 오클랜드 에이스와 빌리 빈의 성패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머니볼'과 영화 '머니볼'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사실을 왜곡한 것은, 뭐 이렇게라도 진실을 밝히고 추락된 인물상을 복권시켰으니 됐다.
내가 이렇게 혼자 떠들어봤자 별로 주목도 못 받을 게 뻔하고 일반인들은 별로 관심도 없을 게 분명하니까 어차피 별로 상관도 없다.

한편, 빌리 빈은 최근 오클랜드 에이스에 2019년까지 머무는 연장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빌리 빈의 머니볼 매직이 빠른 종말을 맞을지 수명 연장의 꿈을 이룰지는 전적으로 그의 손에 달린 문제다.

그리고 나는 진짜 오래 켜지 않았던 MLB 2K11을 실행했다.
제2의 빌리 빈이 되기 위해, 제2의 앤드류 프리드먼이 되기 위해, 아니 우주 최강의 단장 이한결이 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야구를 한다.
내 자그마한 랩탑에서 꿈을 이룬다.
  1. 포지션은 와이드 리시버였다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