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r

| 2012. 4. 4. 00:33

태어나서 무려 세 번이나 내 의지로 보는 영화가 <클로저>말고 또 있게 될까!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 아니면 3학년 때다.
18세 개봉 영화를 어떻게 봤느냐고 묻겠다면 노 코멘트로 일관하리라.
어쨌든 엄청나게 노력해서 <클로저>를 본 당시의 나의 감상을 기억해보자면, 다음의 몇 가지 사항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1. 나탈리 포트만 : 비중만 따지자면 거의 1번부터 10번을 같은 인명으로 채워도 무난.
2. 데미안 라이스 : 그 촉촉한 목소리에 상당한 감명을 받았더랬지.
3. 왠지 멋드러지는 것 같은 분위기 : 남들한테 이런 영화 추천하면 멋진 남자로 인정 받을 것 같았다.

결과 : 나탈리 포트만 빠돌이가 됨, 데미안 라이스 CD 삼, 줄기차게 지인들에게 추천했음.

영화에 대해 좋은 기억만을 안고 있던 나는 <클로저>를,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기록에 따르면, 2008년 11월 5일 무렵에 다시 한 번 본 것 같다.
정말 손가락은 물론, 손목을 절단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평이지만 나는 과거의 추한 껍데기까지 모두 끌어안고 갈 수 있는 도량 넓은 남자이기에 아래에 그 원문을 퍼온다.

아 진짜 나탈리는 나의 angel..

옛날에 정신없이 보고 난 이후로는 처음 제대로 감상하는 클로저.
등장인물들이 다들 매력적이라는 사실엔 변화가 없지만, 피부과 의사가 이렇게 간지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것은 새롭게 알아차린 사실.

이 영화에는 시간의 흐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가끔씩 대사 중에 튀어나오는 부분들을 잘 캐치하지 않으면, 영화가 혼란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사람은 '시간'을 기억하는 걸까, '시각'을 기억하는 걸까?
사랑은 '시간'일까, '시각'일까?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아래의 두 줄은 대충 이런 의도에서 나온 이야기인 것 같다.
순간적으로 빠지게 되는 사랑과 지리멸렬하게 늘어지는 이별의 과정의 대비라든지, 연애의 대한 기억에 전반적인 기간의 평균적인 인상이 주를 이루냐 아니면 순간 순간의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냐 같은 비교 말이다.
뭐 어쨌든 딱히 나쁜 이야기는 없다.
나는 여전히 <클로저>를 훌륭한 영화로서 기억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 보게 된 <클로저>는 나의 이 아름다운 과거, 또는 단순히 미화되었던 과거를 한 번에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다시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며 악의가 아닌 이상 다시는 이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의 계기도 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연출도 흠 잡을 곳이 없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말도 안 되게 훌륭하다.

나의 태도가 이토록 극적으로 바뀌게 된 이유는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
한 줄이면 끝날 이 단순한 이유에 대해 굳이 짧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사랑에 대한, 그리고 연애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 크게 변했다는 하나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참 잘 어울리지 않음? http://sibant.typepad.com/weblog/2004/12/closer.html

2012년에 다시 본 <클로저>가 나의 심기를 가장 크게 건드린 이유는 네 등장 인물의 행동을 이끄는 동기는 물론, 그들이 의도했던 것, 이루려고 했던 것, 그리고 그 동기로부터 목적에 이르기까지의 수단 모두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옛날의 나는 간접적인 화법, 중의적인 메타포, 감성적인 아포리즘 따위야말로 이상적인 연애의 필수 조건으로 생각했다.
참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나는 각진 것보다는 둥근 것이, 꾸준한 것보다는 굴곡이 있는 사랑을 꿈꿨다.
나의 마음은 즉흥적으로 움직였으며, 감정에 크게 뒤흔들렸고, 휘청거리는 그 녀석을 다잡기는 커녕 진폭을 더욱 늘려 감정의 극단을 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덕분에 지금 떠올려보면 헛웃음만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적지 않게 생겼고 나중에 다 늙어서 또 다른 사랑의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은 적어졌지만 내가 그럼으로써 얻지 못한 여러가지를 생각했을 때 제로섬의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25살의 내가 보기에 <클로저>의 등장 인물들은 너무 복잡하고 가식적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너무 현실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미 나의 현실을 직설적이고 단순하고 명확한 방향으로 설정한 나에게 이 영화는 오히려 철저히 비현실적이다.
도무지 삶에 대한 진지함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더 이상 자신의 삶에 대해 무책임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나친 감정의 자유는 탐욕과 욕망 ㅡ 그것도 아주 지독하고 찝찝한 녀석들로 ㅡ 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영화의 이런 저런 성공을 비추어 볼 때 세상은 이들에게서 진짜 현실을 보는 모양이다.
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내게는 슬픈 현실이지만, 이 현실을 현실 그대로라고 인정하는 그들에게도 슬픈 현실이다.
낯선 사람의 낯선 사랑이 빚어내는 불가피한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