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전체가 525쪽이다.
'오랜만에 500쪽이 넘는 책을 읽게 되겠군.'하면서 책장을 스르륵 넘겨보는데 작품은 440쪽에서 끝이 나더라.
그 뒤로 작품 해설이 26쪽 이어지고 옮긴이의 말이 5쪽 등장하고 작가 연보 53쪽으로 끝이 난다.
구성이 이렇게 되어 있는 책은 대개 '굉장히 재미없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마련인데 <성 앙투안느의 유혹>은 그런 나의 편견을 깨기는 개뿔 역시나 재미가 없었다!
<성 앙투안느의 유혹>의 모티프가 된 브뢰헬 2세의 동명의 그림. http://jb.guinot.pagesperso-orange.fr/pages/Balbi.html
줄거리는 정말 간단하게 "성 앙투안느의 유혹"이라는 구절로 모두 정리가 되는데, 조금 더 구체화하자면 성 앙투안느가 누군가를 유혹하는 게 아니고 누군가가 성 앙투안느를 유혹하는 희곡 소설이다.
희곡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꼭 실제 무대에 올리기 위한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요새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스펙터클한 연출이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이런 글이 보여주는 영상미에 신경을 집중한다면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대개 아래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소설 초반, 7개의 대죄가 등장해 고행 수도를 하고 있는 앙투안느 성인을 유혹하는 장면이다.
논리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여인들과 함께 있었지. 그가 신이었는데도! 너라고 왜 하나쯤 받아들이지 말란 법 있어?음욕
왜, 다른 사람들처럼 같이 살 사람 하나쯤 만들지 않는거지?인색
나이가 지긋한, 기품 있고 배려할 줄 아는 부인이라면, 네 재산을 관리하고 집도 깨끗이 정리할 거야. 은그릇들은 투명해지고 찬장이 반짝반짝 빛날걸.식탐
그녀는 양쪽에 고리가 달린 우묵한 접시에다 고기를 담아 내오겠지, 걸쭉한 소스 한가운데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고기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역시나 논리다.
음욕, 인색, 식탐, 질투, 분노, 교만, 나태 같은 가치야 무신론적인 입장이든 반종교적인 입장이든 또는 그냥 편하게 보편적인 기준에서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의 입장이라고 해도 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녀석들 사이로 논리라는 악(惡)이 등장한다.
다른 7개의 죄가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앙투안느를 유혹한다면, 논리는 이름 그대로 냉철한 논리 전개를 통해 가톨릭 교리의 허구성을 폭로하려고 한다.
과학이라는 학문적 가치가 악마와 한통속으로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플로베르가 기본적으로 무신론 노선의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 많은 흥미가 생긴다.
어째서 논리와 과학은 악마의 편에 서서 앙투안느를 유혹하는 입장이 되었을까?
앙투안느
갑옷을 입기엔 난 너무 허약했어.논리
너는 지금 무거운 고행자의 옷도 잘 입고 있잖아.앙투안느
야영지에서 시시덕거리기엔 너무 진지하고, 사람을 죽이기엔 나는 너무 온순해. 전쟁은 저주받은 행위야.논리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전쟁은 다 뭐지? 다윗은 정복자였고, 베드로는 검을 지녔으며, 예수 자신이 사람을 치기도 했는데…….
여기까지 보면 앞으로 꽤나 흥미진진한 내용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책의 초반은 나의 혹평과는 달리 꽤나 재미 있는 편이다.
극초반부를 벗어나면서는 각종 이단 논쟁이 지면을 채우게 되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ㅡ 첫째로 고작 3~4세기까지의 카톨릭사만 보더라도 이렇게나 많은 이단들이 존재해 왔다는 사실에, 둘째로 그런 이단 논쟁에서 자신의 논리를 꿋꿋이 지켜온 카톨릭 교리의 굳건함에, 셋째로 이 많은 자료들을 인터넷도 컴퓨터도 존재하지 않은 옛날에 깔끔하게 정리해낸 플로베르 본인의 노력에 ㅡ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거의 <신곡>에 필적하는 스케일을 무기로 독자들을 무한한 철학의 판타지로 빠져들게 한다.
미니홈피에서 벌어지는 무한한 철학의 판타지.
문제는 이쯤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가볍게 읽어도 별로 쉽게 읽히지 않는 내용이 철학적인 사변으로 번지고 거기에 등장하는 대상들까지 살면서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인물과 단어들로 바뀌어가면서 방대한 양의 주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이해의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래 아폴로니오스의 대사를 한 번 쓱 읽어보라.
그러면 내가 느꼈던 그 채워지지 않는 틈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폴로니오스
그것은 내가 항아리의 손잡이를 잡고 술을 바치기 때문이고, 인도인들의 기도문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아폴론의 아들, 트로포니우스의 동굴에 내려갔기 때문이니라. 6일 동안, 동굴의 어둠 속에서 노를 저었고, 7일째 되던 날 피타고라스의 사상서를 가지고 그 곳을 나왔느니라. 시라쿠사의 여인들이 산 위에서 소리치며 들고 다니는, 장밋빛 꿀로 반죽한 남근들을 내가 만들었느니라. 나는 미트라의 스물네 가지 시험을 거쳤으며, 카베이로이 축제의 자주색 목도리를 받았고, 엘레우시스의 신비 의식에 관한 물음에 답변을 했으며, 사바지우스의 황금 뱀이 내 가슴 위로 미끄러지는 것을 느꼈고, 캄파니아 만의 파도에 키벨레를 씻겼으며, 사모트라케의 동굴에서 달이 세 번 기울도록 머물렀느니라.
각각의 고유 명사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특정한 사건은 무슨 내용이며 그런 사건이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배경으로 연출되는 상징적인 기호, 의식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원래 소설의 흐름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주석으로 시선을 옮기다보면 큰 맥락을 놓치기 십상이다.
관점을 바꾸어보면 꽤 재미 있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 당시에 플로베르의 이 소설이 나왔을 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어떤 느낌으로 내용을 이해했는지가 궁금해졌다.
플로베르 자신은 독자들이 자신의 의도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걸까.
그렇게 교양이 넘치지는 않지만 또래에 비해 그렇게 교양이 없는 사람이 아닌 내가 이렇게 이해에 쩔쩔 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나 같은 사람은 그의 예상 독자 집단에 아예 포함조차 되지 않은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앙투안느 성자의 고행이 순전히 플로베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카톨릭사에 기록되어 있는 거대한 신학 철학적 서사시라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책을 읽을 것이라고는 당연히 생각도 못한 일이 아닐까.
그래, 따지고 보면 <성 앙투안느의 유혹>은 정말 재미가 없는 책보다는 너무 어려운 책에 가깝다.
작품 해설이라도 꼼꼼하게 읽어 아쉬움을 달래고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이내 포기했다.
한 번 읽고 어려웠던 책은 해설을 통해 어렵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인상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그냥 어려운 책이었다는 기억을 가지고 가는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바로 이어서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마담 보바리> 정도의 작품이 딱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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