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 From Earth

| 2012. 4. 13. 10:23

하도 뭐 대단한 영화네, 충격적이네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서 그런가,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주제가 되는 소재는 분명히 흥미롭다.
30세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은 14,000살의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면?
과연 14,000년 동안 세상에 나와 있던 사람의 지식 체계, 인식 체계는 어떤 구조를 하고 있을까?

영화의 초반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여 왔던 것,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은 사실상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인생 대부분 동안은 인류가 불과 최근 2,000년 사이에 알게 된 사실들도 모르고, 그러한 사실들을 담을 수 있는 놀라운 환원주의의 체계 또한 없었다.
그가 최근 2,000년을 타임 리프해서 오지 않고 직접 그 시대를 겪으며 오긴 했지만, 어떤 지식을 당대에 얻는 것과 현재적인 관점에서 과거의 지식을 얻는 사이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괴리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일반인들의 관점을 대변하는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의문점들을 주인공에게 제시하고, 주인공은 그 질문에 담긴 관점이 얼마나 현재적이고 편협한 것인지 매우 부드럽게 대답하는 것의 연속이다.
영화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시간들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를 던져 주며, 관객들의 머리에 즐거운 과제를 부여한다.
뭐, 여기까진 그럭저럭 성공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세트장 전경. http://www.hutchnews.com/Preview/1-20-preview--man-from-earth

영화가 좀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부분은 우리의 14,000살 주인공이 종교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이다.

<맨 프럼 어스>는 바로 이 부분부터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내러티브를 구사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기존의 이야기는 우리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끔 하는 것으로, 더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말 그대로 우리가 모르는 것,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큰 맥락에서 보면 결국 같은 흐름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맨 프럼 어스>의 후반부는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것 ㅡ 그것을 역사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이든, 하나의 신화로서 받아들이든, 하나의 절대적인 계시로서 받아들이든 ㅡ 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기성 가치관과 상반되는 이야기를 던진다.

화법이 이런 식으로 바뀌다보니 자연히 이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의 내용도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전반부의 이야기가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면, 후반부는 서로가 알고 있는 다른 사실을 놓고 두 가지 입장이 충돌하는 방식이다.
비록 최근의 유신론, 무신론 논쟁에 <맨 프럼 어스>의 주인공처럼 "내가 예수다!"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았지만, 나처럼 종교적인 이슈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식상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면, 전반부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흥미를 유도하고 영화 속 주인공에게 정당성과 신빙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게 획득된 정당성과 신빙성을 가지고 후반부의 이야기로 들어서 꽤나 지루하고 진부한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 영화의 제작자들이 결국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후반부의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많은 종교인들이 <맨 프럼 어스>를 두고 분개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평에서 접할 수 있었는데, 나 같은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영화가 제시하는 생각은 상당히 타당한 추측이다.
오히려 예수를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로, 시대의 당위성을 부여 받은 사람으로라도 봐주는 것에 감사해야 할 처지가 아닌가.
그가 아킬레우스라든지, 헤라클레스라든지 하는 그런 신화적이고 민속적인 인물이 아닌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것만으로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은 것 아닌가.
영화는 꽤 간단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예수라는 인물의 배경과 가르침의 기원을 설명한다.
더불어 현재 존재하고 있는 종교에 대한 뼈 있는 일침도 잊지 않는다.
엄청난 훅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력적인 잽이다.

맞으면 상당히 쓰라릴 듯.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맨 프럼 어스>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 역시 여기에 있다.
굳이 종교적인 이야기로 빠질 필요가 있었을까.
만약 이 영화의 제작 의도가 관객들에게 새로운 생각의 지평을 열어주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지적인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었다면 앞에서부터의 흐름을 차분히 이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미스테리에 부치는 컨셉만 유지했더라도 영화가 주는 상징성과 왠지 오싹한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의 의도 ㅡ 내가 결론 내린 것에 따르자면 결국 종교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그 의도 ㅡ 를 폄하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갑자기 바뀌는 부분에서의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고 그 뒤로 이어지는 대화들 사이의 긴장감도 떨어진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갑작스런 결론의 어색함도 같은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차라리 이야기가 처음의 방향대로 흘러갔더라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그 엔딩의 위화감도 대폭 줄어들었을 터.

<맨 프럼 어스>는 흥미로운 소재와 실험적인 시도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다만 이번 경우에는 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