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kes <First Impressions Of Earth>

| 2012. 4. 17. 11:14

아이들은 언젠가는 커서 어른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몸소 일깨워주는 스트록스의 3집 되겠다.
모두가 지적하듯이 스트록스의 3집 <First Impressions Of Earth>는 확실히 과거의 모습에서 탈피한 앨범이다.
풋풋하고 치기 어린, "맨발의 청춘" 같은 진부한 관용어구가 어울리는 예전의 음악은 거의 온데간데 없다.
대신 메인 스트림의 냄새를 물씬 풍기며 더 능글 맞고 더 느끼해진 사운드가 전면으로 부각되었다.
분명히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던 과거의 그 꾸러기 같은 모습은 사라졌지만, 사람이 언제까지나 마냥 "꾸러기"들로만 남아 있을 수는 없다는 힘겨운 고찰 끝에 내놓은 이 앨범 정도라면 충분히 끌어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누군가의 변화된 음악 그 자체만을 보고 자신의 호불호에 따른 반응을 하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때로는 호불호와는 무관하게 그들의 환골탈태에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쓴 말이다.

스트록스의 1집2집을 유심히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취향 문제 같은 것은 모두 제쳐두고서 이들의 음악이 얼마나 다이나믹하게 변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가장 큰 맥락에서 이 변화를 설명하자면, 사운드의 무게감과 속도감에서 아마추어, 인디 밴드의 티를 확 벗어던지고 대형 밴드, 프로 밴드의 옷으로 싹 갈아입었다는 것이다.
앨범의 첫 싱글로 발매된 'Juicebox'와 이어지는 트랙이자 앨범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Heart in a cage' 같은 곡은 이런 변화의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Heart in a cage'와 아주 판박이 같은 소리를 들려주는 'Electricityscape'와, 비슷한 비트를 채용한 'Vision of divison' 같은 곡까지 연장선을 그어 보면 과거의 모호하고 무채색적인 코드보다 더 뚜렷한 코드음을 사용해 청중들에게 더 직설적인 화법으로 다가가려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
잠깐 빠지는 이야기인데 바로 위에서 언급되는 저 세 트랙에서 매튜 벨라미의 뮤즈가 생각나는 것은 나뿐인지?

앨범에서 가장 재밌게 들은 트랙은 4번 'Razorblade'다.
아무래도 포스트 펑크에 살을 덧붙인 형태이다보니 거의 네오 펑크[각주:1]에 가까운 발랄함이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크레파스와 비슷하다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저 촉촉하고 퍽퍽한 기타 톤과 앵앵거리는 어린 감성의 가사 등의 요소를 고려했을 때, 과거와의 타협 또는 반대로 미래와의 타협을 가장 조화롭게 이뤄낸 트랙이라고 본다.

'Ask me anything'에서는 인트로의 멋진 사운드적 시도가 돋보인다.
느낌은 상당히 다른 편이지만 기저에 깔린 의도로는 앨범의 인트로 트랙 'You only live once'의 도입부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없잖아 있다.
사운드 이야기를 하자면 앨범 후반부의 'Ize of the world'를 빼놓을 수 없는데 직접 들어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감이 올 것이다.
이렇게 말로 딱 튀어나오지 않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그냥 입 다물고 들어보라고 하는 것이 서로 피곤하지 않은 방법.

과거 스트록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래 트랙들을 유심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박자만 정8박이었다면 완벽한 과거로의 회귀였을 'Killing lies'와 기타 리프의 무게감만 줄였더라면 마찬가지로 예전의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Fear of sleep'이 그 두 트랙.
죽죽 늘어지는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의 보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늘어지는 개러지라고 할 수 있는 'Evening sun'도 썩 괜찮게 들을 수 있을 터.

앨범 맨 마지막의 두 트랙인 '15 minutes'와 'Red light'는 매너리즘에의 극복 의지가 보이고 이 정도면 충분히 포스트 펑크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고 내가 휘갈긴 메모가 있기는 한데, 다시 들어보니 솔직히 좀 개소리에 가깝고 그냥 내 귀에 썩 맞지 않다는 것의 에두른 표현인 것 같다.

다시 맨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대중의 평이라고 할 수 있는 판매량면에서든 전문가의 평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평단의 평점면에서든 <First Impressions Of Earth>는 그다지 성공적인 앨범이 아니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음악이 사향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거나 이제 이렇게 이상해졌으니까 그만 들어야겠다고 마음 먹는 것은 시기상조다.
단순히 관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비일 수도 있겠지만, 스트록스의 3집은 모두에게나 불가피한 성장통의 결과물이었다고 본다.
언젠가는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때다.

언젠가는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긔.

스트록스는 이미 6년 전에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이 통과 의식을 가뿐하게 치렀다.
이 짧은 글을 통해 격려와 축하의 박수는 충분히 쳐준 것 같다.
이제는 4집을 들어볼 차례다.
과연 내 자비와 박수가 어느 정도의 실효성이 있는 것이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들어봐야겠다.

  1. post punk와 neo punk라니, 정말 내가 생각해도 오글거리기 짝이 없는 단어들이지만 우리가 흔히들 쓰는 말들이니 어쩔 수 없이 나도 관례를 따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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