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수많은 질문 공세로 시작되었지만 철학자가 쓴 책인지라 속 시원한 답변이 제시되면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질문들이 더 나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이 책을 통해 마음의 다양한 갈래는 지속적으로 탐구할 때 따라가도 좋을 길과 피해야 할 함정을 지혜롭게 분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책 <마음의 진화>는 상당히 생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의 진화 관련 생물학 책과는 달리 역사를 거슬러 기원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이 더 근본적으로 보이는 논의를 하지 않는 이유는 첫째로 글쓴이 대니얼 데닛의 전공 분야와 관련이 있다.
대니얼 데닛의 이력을 짧게 살펴보자.
그는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터프츠 대학교 과학 및 철학 교수이며 같은 대학교 부속 인지 연구 센터의 소장이"다.
궁극적인 해답이 아닌 심화된 질문을 끊임없이 제시하며 나아가는 학문인 철학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리고 이런 식의 대중적인 과학 서적을 쓸 때 피해갈 수 없는 길이었다고 본다.
데닛은 철학적 인식론의 개념들, 예컨대 흄이 제시했던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 따위로부터 영감을 받아 생물학적인 인식론으로 논의의 범위를 넓혀나가는데 나 같은 사이비 철학도 + 실용주의자의 관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전개다.
<촘스키, 사상의 향연>에서도 엿볼 수 있었던 철학의 학문적 역할이 다시금 빛을 발하던 대목이다.
두 번째 이유는 위 인용문에서도 잘 나와 있지만 원래 이 책의 목적 자체가 궁극적 해답을 제시하는 것, 즉 "마음의 진화"라는 주제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의 진화>는 오히려 마음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 그 기저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답을 내놓자는 것이 아니라 그 답으로 가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과 고려하지 말아야 할 점, 취해야 할 자료들과 버려야 할 태도들을 논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다윈주의를 다룬 책 ㅡ 솔직히 말하면 <마음의 진화> 자체가 다윈주의를 주로 언급하지는 않기 때문에 비교하기 조금 버거운 면이 없지 않지만 ㅡ 보다 더 신선하게 읽히는 책이라고 본다.
마지막 이유는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몰라.. 뭐야, 그거..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받아들였던 개념은 "지향계"와 "지향적 자세"다.
지향계는 "그 행동이 지향적 자세에 의해서 예측되고 규명되는 모든 존재"이고, 지향적 자세란 "행위자가 (주어진 조건 속에서는) 오직 지혜로운 수만을 둔다는" 가정이다.
지향적 자세의 이해가 마음의 연구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는 까닭은 아주 자명하다.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지향적 자세를 다른 존재에 들이대면서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데 쓰는 자기만의 남다른 수법을 고집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틀을 다른 존재에게 강요하는 오만한 행동인 셈이다. 그러다 보면 지향계를 실제보다 훨씬 명료하고, 내용도 실제보다 훨씬 선명하고 정교하고, 짜임새도 실제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잘못 아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우리 마음의 특수한 조직화 '유형'을 이 단순한 체계 안으로 지나치게 끌고 들어갈 위험성도 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 곧 수많은 욕망, 정신 경험, 정신 자원을 이 단순한 마음의 후보자도 공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극성의 정도를 1~10이라고 잡았을 때 약 5~10 정도의 애완 동물 애호가들이 흔히들 가지고 있는 진부한 프레임이 아주 개박살 나는 순간이다.
멍멍이와 고양이들, 애완동물에 대한 호감이 거의 1~2 정도에 불과한 나의 입장에서 "개"와 "고양이 새끼"는 당신들 ㅡ 5~10 정도의 애완 동물 애호가를 가리키는 말 ㅡ 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적인 사고 따위 할 수 없는 존재다. 1
왜냐하면 애초에 다른 생명체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 우리 인간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반문은 두 가지다.
사람의 감각 기관과 개나 고양이의 감각 기관이 기능에 있어 차이는 없고 오히려 그 능력에 있어서 개와 고양이가 훨씬 뛰어난데 대체 무슨 그런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겠냐?
또는 분명히 내가 기르는 개 또는 고양이는 이렇게나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인간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잔인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냐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현재 지구에서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언어"의 힘으로, 후자의 답으로는 단순한 감응력과 감지력의 차이로 풀어나갈 수 있다.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감응과 감지의 기원은, 데닛에 따르면 열쇠 - 자물쇠의 관계만큼이나 간단한 메커니즘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외부의 정보를 일단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다윈주의의 발로에서 시작된 이 논의는, 진화의 산물이 가져올 수 있는 매우 방대한 스펙트럼 속에서 우리에게 시공간의 관점 차이를 넘어설 줄 아는 자세를 요구하게 된다.
한 덩굴 식물이 다른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라나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과연 식물에게 무슨 마음이 있겠냐는 생각에 빠지기 쉽지만, 그 장면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 고속 재생시킨다면 어떨까?
데닛이 드는 예처럼 "모기가 갈매기만큼 크다면 모기에게도 마음이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 것이며 수달의 익살스러운 몸짓을 현미경을 통해서 봐야 한다면 우리는 수달이 장난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지금보다는 덜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몸이 가진 하나의 기능이고, 신체적인 기능과는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는 감응력과 그렇게 받은 자극들을 토대로 고유한 판단을 내리는 감지력의 차이를 조심스럽게 구분해야 한다. 2
이에 대한 연구가 아직은 매우 기초적인 단계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어떤 생명체의 특정 자극과 특정 반응 사이의 알고리즘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섣불리 의미 부여를 하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 빠지면 안 되겠다.
물론 동물들이 정말 인간다운 면모를 보일 때가 있기는 하다.
예리한 애완 동물 애호가라면 여기서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는데, 그래서 결국 동물도 사람 같이 생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는 반론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올바른 지적이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논의를 옮길 수 있는데, <마음의 진화>를 읽은 나의 입장은 백 번 양보하더라도 인간 외의 동물은 죽었다 깨어나도 사람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예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아주 기초적이고 원초적인 생각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내가 이렇게 단호하고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이유는 알려진 것에 따르면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그 어떠한 생명체도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언어라고 부를 수 있는 놀라운 도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긴 서론의 논리를 잘라내고 결과만 보면 이렇다.
언어가 갖는 놀라운 상징성과 함축성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보편문법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둘러봐야 더욱 진리에 가까운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인간의 세계에서 개념은 대상이다. 인간에게는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북극곰은 사자와는 달리 다양한 방식으로 눈과 대면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북극곰에게는 사자에게는 결여된 눈의 개념이 있다. 그러나 언어를 갖지 못한 어떤 포유동물도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눈의 개념을 가질 수는 없다. 언어가 없는 포유동물은 눈 '일반' 혹은 눈 '자체'를 고찰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북극곰이 눈에 해당하는 단어(자연어)를 갖지 못한 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자연어가 없이는 내부의 복잡하게 얽힌 연관성으로부터 개념을 짜내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능력도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에 대한 북극곰의 암묵적 또는 과정적 지식(북극곰의 눈에 대한 노하우)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심지어는 그것을 탐구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북극곰이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개념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말은 못할지언정 분명히 생각은 한다!" 이 책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이런 일반적 반응에 담긴 여러분의 확신을 뒤흔드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아닌 동물의 정신 능력을 투명하게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동물의 영리한 행동에 인간의 의식과 흡사한 반성적 의식의 흐름이 수반되고 있으리라는 거의 맹신에 가까운 우리의 상상인지도 모른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조밀한 논리다.
그렇다고 해서 데닛과 내가 동물에게 그 어떤 형태의 마음도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지어다.
여기서 타파하고자 했던 그릇된 일반론은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이 인간과 비슷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세계관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데닛은 이에 대해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실로 굉장한 발견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진화의 긴 역사 속에서 그들의 몸에 체득된 방대한 양의 정보들과 그런 정보들을 처리하는 독창적인 프로세스를, 한낱 인간의 좁은 소견으로 더럽히지 말자.
<마음의 진화>에서 다루는 주요한 내용들인 마음 탐구의 방법론에 있어 곁다리로 등장하는 동물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는 가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얼추 책에 등장한 내용 전반을 다루게 된 것 같다.
책의 논지를 확장해 우리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알쏭달쏭한 이야기인 타인의 마음에 대한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언젠가 끄적이고 싶다.
정리하면, 인간의 마음이라는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닌, 생명체의 마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가 궁금하다면 주저없이 선택해야 할 책이다.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저자의 논조에 따라 휘둘리게 마련이기 때문에 <마음의 진화>가 절대적인 의미에서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뛰어난 글 솜씨와 논리를 통해 독자들을 편견의 늪으로 몰고 가는 책은 아닌 만큼 어떤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나 신선하게 읽힐 책이다.
책을 읽은 뒤로 마음에 대한 이해가 한 차원 높아졌다.
고 믿고 싶다.
- 왜 고양이 뒤에는 새끼가 붙었느냐? 고양이라는 말 자체에 강아지라는 단어에 버금가는 따스함과 정겨움이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양이 뒤에 새끼를 붙였다. 내가 여기서 말하려는 대상이 새끼 고양이가 아님을 알아달라. [본문으로]
- 이 내용은 책 전체에서 볼 때는 상당히 중요한 주장이다. "진화는 모든 유기체의 모든 부위에 정보를 담는다. 고래의 수염에는 고래의 먹이에 대한 정보가, 고래가 그 안에서 먹이를 찾는 액체 매질에 대한 정보가 있다. 새의 날개에는 새가 그 안에서 활동하는 매질에 대한 정보가 있다. 카멜레온의 피부에는 눈앞의 환경에 관한 정보가 생생히 담겨 있다. 동물의 내장과 호르몬계에는 그 동물의 조상이 살았던 세계에 대한 정보가 듬뿍 있다. 이런 정보가 뇌에 꼭 베껴지지 않더라도, 신경계의 '자료 구조'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신경계는 이것을 써먹을 수 있다. 신경계는 팔다리와 눈에 담긴 정보를 써먹고 거기에 기대도록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호르몬계에 담긴 정보도 써먹고 거기에 기대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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