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ulu

| 2012. 4. 18. 08:14

재미가 있을 법하지만 끝까지 그럴싸한 재미는 못 주는 영화다.
동시에 <내일을 향해 쏴라>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식의 관점 문제를 들먹이자면 평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다.

분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부분 부분의 디테일이 사실과는 상당히 다르고 ㅡ 특히나 이런 실화 바탕의 영화에서 제기되는 진부한 문제, 즉 이런 식의 드라마틱한 장면 따위는 없었다는 판에 박힌 논쟁에서 역시나 빠져나갈 구실이 없다 ㅡ 실제로 그런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어쨌든 영국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듯한 불온한 연출이 후반부를 장식하는가 하면, 영화가 자랑하는 전투 장면의 경우 각각의 군대가 진형을 갖추고 있는 모습은  제법 웅장함과 진중함을 동시에 자아내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고 나면 그 거룩한 위용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갑자기 70년대 촌극이 눈 앞에 떡 나타난다.

아래의 비디오 클립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줄루족의 마지막 공격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군이 부르는 비장한 군가는 사실 당시 이 부대가 속한 연대의 군가도 아니었을 뿐 더러 실제로 저와 같은 군가 서바이벌 대결 같은 상황은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소수의 마린 앞으로 달려가다가 모두 케첩 꼴이 나고 마는 저글링 마냥 등장하는 줄루족의 모습을 보면 굉장한 허탈감을 느낄 수 있는데 영화의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줄루족을 미개인, 원시인으로 보는 그 관점은 참을 수 없는 공허함을 준다.
피터 잭슨이 헬름 협곡 전투 장면을 촬영할 때, 리들리 스캇이 <글래디에이터> 인트로 전투 장면을 촬영할 때 영향을 받았다는 <줄루>의 전투 장면은 위 클립에서 보이다시피 일단 백병전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초등학교 운동회 콩 주머니 던지기 꼴로 전락하고 만다.

여러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은 이 영화가 개봉한 시점이 1964년이라는 점과 야외 촬영이 실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벌어졌다는 극악의 핸디캡을 감안하면 너그러이 이해가 가능하다.
스탠리 큐브릭의 1960년작 <스파르타쿠스>를 방불케 하는 방대한 스케일과 정말 꾸질꾸질하기 그지 없는 영국군의 사실적인 연출 등은 오히려 시대적인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스토리 또한 관대한 입장에서 보자면 역사 다큐멘터리적 취지에까지 이데올로기의 어두운 영향이 미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이 정도의 재현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해 줄 만하다.
그리고 불과 반세기전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만연했던 이런 역사의 정당화 또는 미화 과정도 고려에 넣음직하다.
물론 그럼으로써 얻는 것은 당시의 자연스러운(?) 트렌드에 영합하는 시나리오였다는 거지, 그런 왜곡 행위 자체에 대한 면죄부까지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다.

정상 참작을 하더라도 여전히 높은 점수는 줄 수 없는 영화다.
줄루족의 후예들이 충분한 기술력을 갖게 된 뒤, 요즘 나오는 각종 전쟁 영화처럼 신박한 촬영과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리메이크를 만든다면 그나마 나의 비판점들을 피해가는 "재밌는"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