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침대에 이러고 누워서 멀뚱멀뚱하다가 문득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가벼운 멜로 영화가 보고 싶어졌더랬다.
그런데 이리 뒹구르고 저리 뒹굴러도 내가 여태까지 보지 않은 아오이 유우 주연의 영화를 볼 방법이 마땅히 생각나질 않았다. 1
대체재를 생각하다가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가벼운 멜로를 생각하다가 이런 공포 스릴러가 떠올랐다는 것에서 고개를 갸웃할 수 있겠다.
순전히 여자 주인공의 남상미라면 얼추 아오이 유우를 퉁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취지에서 머리가 번뜩인 것에 불과하다.
울지마. http://extmovie.com/zbxe/1823472
여태까지 제대로 된 한국 공포물을 본 적이 거의 없다는 나의 경험에서 봤을 때 <불신지옥>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이런 공포물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어떤 사람에게 무서움, 공포감을 주기 위해서는 굉장히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기괴한 장면 연출, 소름 돋는 귀신 분장과 그럴싸한 3D, 뒤를 돌면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함, 그리고 실제로 뭐가 튀어나왔을 때의 놀람, 치밀한 플롯 등 공포 영화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이 중에 사소한 몇 가지 핀트만 나가더라도 관객의 긴장감은 팍팍 떨어지기 마련이다.
기존의 한국 공포물은 이 점에서 '실패'했다.
감독의 취향인지 연출자의 취향인지 어쨌든 누군가의 개인적 취향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분야에 정도를 지나친 집착이 보이면서 공포 요소에 대한 균형이 깨지고 마는 것이다.
<불신지옥>은 다르다.
어떻게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공포감을 주는 요소는 없지만 각 요소들 사이의 밸런스를 조화롭게 유지함으로써 전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부분합을 만들어냈다.
영화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플롯상 불가피하게 들어가야 했던 기독교 디스의 정도를 알맞게 조절했고 실마리가 풀려가는 과정도 아귀가 척척 맞아 들어가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CG도 없었고 음악도 적재적소에 활용해 긴장감을 유지했고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그로테스크함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적당한 공포감을 선사했다.
주·조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에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다.
역시나 여기서 남상미 연기에 대한 칭찬이 빠질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자극적인 요소들이 빠진 이야기 속의 여주인공이라 그런지 다른 일반적인 공포물의 여주인공과는 달리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눈알을 부라리거나 하는 연기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무슨 공포 영화 하나만 찍고 '호러퀸' 훈장을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준 것 같은 느낌, 왠지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역할이었다.
써놓고 보니 칭찬인지 디스인지 헷갈리네.
류승룡의 연기야 <최종병기 활>에서 아주 실감나게 느낀 적이 있었으니 패스.
후에 <써니>에서 주목을 받게 되는 94년생 심은경도 나이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그 외 조연들은 딱 봐도 연기 잘 하게 생긴 사람들을 골라놨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특히나 이 영화가 마음에 드는 점은 한국 공포물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괴상하고 징그러운 연출에의 집착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적성을 떠나 많은 공포 영화들이 공포감 조성을 위한 징그러운 연출에 집착하다가 그만 매니아들만 즐길 수 있는 3류 고어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점에서 적정한 수준을 유지한 <불신지옥>은 호러물 초심자에게 주저없이 권할 만한 공포 영화다.
담백하다는 표현이 공포 영화에 어울리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극심한 공포감을 조성해 실제 관객의 삶 곳곳에까지 침투하는 그런 영화는 되지 못하더라도, 참 담백하고 깔끔한 화면을 담았다.
예고편 영상은 아무래도 그 자신의 본질적인 정체성의 한계를 드러내기 때문에 내가 말한 특유의 담백함 따위는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 퍼온다.
하지만 조금만 인상을 쓰고 영화를 바라보면 아무래도 허술한 점이 눈에 뜨인다.
<불신지옥>이 전반적인 공포감 조성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 부분들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왜 이 영화가 "담백한" 공포감 ㅡ 다르게 말하면 단순한 심심함 ㅡ 을 줄 수밖에 없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플롯의 경우 이걸 사족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리가 안 된다고 해야 하는지, 부차적인 정보는 많이 뿌려놓고는 그에 대한 카타르시스는 없어서 왠지 찝찝한 느낌을 주는 부분이 적잖이 있었고 ㅡ 대표적인 것이 남상미의 기침 증세 ㅡ 생뚱 맞은 이야기가 벙하니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ㅡ 수위 아저씨의 월남전 드립 ㅡ 가끔은 정해진 결론으로의 유도를 위해 인위적인 진행이 삽입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또한 다소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오픈 엔딩을 지향했으나 결국 이게 감동 코드인지 미스테리 코드인지 알 수 없게 포장되어버린 최후반부 장면과 클리셰의 끝을 보여주는 엔딩 장면.
일상적인 공포감 조성을 위해 아파트라는 공간, 이웃들이라는 소재를 동원했으나 워낙에 공포감 자체가 떨어지는 영화라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일단 무섭지가 않다는 단점도 숨길 수 없다.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손톱만큼만 더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아무래도 종교 이야기가 전면으로 등장했으니 말도 안 되는 종교 논쟁이 <불신지옥>을 따라다니겠지만 정말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영화에서 종교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내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 것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2
마지막으로 포스트가 미괄식이 아니라 중괄식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끝을 낸다.
분명히 괜찮은 영화였다.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Stevie Wonder <With A Song In My Heart> (0) | 2012.05.05 |
---|---|
아미(Army) <Dora> (0) | 2012.05.05 |
Seven (2) | 2012.05.02 |
Breakfast At Tiffany's (0) | 2012.04.29 |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 (2) | 2012.04.27 |
네이버 음악 이 주의 발견 - 국내 앨범 4월 셋째 주 40자평 (0) | 2012.04.23 |
마음의 진화 (0) | 2012.04.22 |
멋지게 음반 정리하는 법을 알고 싶다 (1) | 2012.04.20 |
Zulu (0) | 2012.04.18 |
The Strokes <First Impressions Of Earth> (0) | 2012.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