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인 10월 25일 화요일도 심심한 날이었다.
아무래도 주말이 지날 때까지는 계속해서 이런 식의 생활이 계속될 것 같았다.
그 지루함과 심심하게 질린 우리는 일과를 마친 뒤 전날처럼 외출 준비를 하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깜밥집’을 소개해 준 지인이 알려준 또 다른 맛집, 중국집 ‘라이라이’를 가보기로 했다.
라이라이는 깜밥집이 있는 길의 후방부에 위치한 곳인데, 보산역부터의 거리를 따져 보면 대충 300m쯤 될 것이다.
내부는 깜밥집과 비슷한 분위기다.
딱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위생이 유지되고 있었다.
나까지 총 5명이 가서 짬뽕밥 2개에 짜장면 2개, 짬뽕 하나를 시켰던 것 같다.
TV를 보면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빈 대접 3개가 나왔다.
짬뽕 국물에 포함된 홍합 껍데기를 놓으라는 용도로 제공되는 것 같았다.
무슨 큰 그릇이 3개씩이나 필요하냐며 그릇 배치를 다시 하고 있을 때 아주머니가 짬뽕을 가져왔다.
우리는 그 무시무시한 짬뽕을 보고서야 왜 짬뽕 하나 당 빈 그릇 한 개를 주는지 알게 되었다.
강남역 근처 술집에서 그만한 짬뽕탕을 시키려면 맛의 훌륭함은 제쳐두고서 그 양만 보더라도 족히 15,000원 돈은 들게 되리라.
홍합은 조심조심 집지 않으면 그 거대한 홍합의 탑이 와르르 무너질 만큼 수북이 쌓여 있었다.
뒤이어 짜장면이 도착했고, 그 양은 보통 중국집 짜장면의 곱빼기는 될 수준이었다.
도저히 음식 위에 올라가 있는 홍합을 먼저 먹지 않으면 국물을 퍼먹을 수가 없을 것 같아 나는 어쩔 수 없이 홍합부터 다 먹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홍합이 어느 정도로 많았냐 하면 내가 홍합을 다 먹고 국물과 다른 건더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쯤 짜장면을 시킨 사람들은 식사를 거의 마쳐가고 있을 정도였다.
평균보다 약간 빠른 속도로 밥을 먹는 내가 가장 늦게 식사를 마친 것 같다.
맛도 훌륭했다.
가격도 몹시 착했다.
내가 먹은 짬뽕밥이, 현금으로 계산하면 ㅡ 카드로 계산하면 음식 값이 약 1,000원에서 1,500원 정도 오른다 ㅡ 4,000원 수준이었다.
동두천의 밥 인심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보산역 근처의 밥집들이 주 고객층인 동네 주민과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카투사를 겨냥한 덕이 크긴 하지만 가성비를 따지자면 이토록 훌륭한 곳은 전국을 찾아봐도 손에 꼽을 수준일 것이다.
볼록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흡족하게 라이라이를 나왔다.
지난 날보다 시간이 훨씬 넉넉했다.
이틀 연속으로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니 길도 어느 정도 낯이 익게 되어 활동 반경을 좀 더 넓혀보기로 했다.
현금도 찾을 겸, 밤에 심심풀이로 할 만한 것도 찾을 겸 보산역 근처에 있는 편의점을 들렀다.
개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편의점이었다.
분명히 배가 매우 부른 상태였을 텐데도 호빵 기계를 보자 달달한 단팥 호빵이 먹고 싶어졌다.
찜기를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맛있는 호빵이 살살 익고 있기는커녕, 찜기엔 전원도 채 안 들어온 상태였다.
실망한 나는 계산대의 알바생을 돌아보며 호빵이 없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놀랍게도 계산대에 서 있던 알바생은 꽤 귀엽장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녀는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일단 알았다고, 괜찮다고, 어쩔 수 없다고 해뒀다.
남자들끼리 모인 밤에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카드 놀이라고 생각해서 트럼프 카드를 사기로 했다.
가판대에 가격표가 제대로 붙어 있지 않은 세 종류의 카드 세트가 구비되어 있었다.
제일 싼 것과 제일 비싼 것의 가격 차가 13,000원이나 나서 나는 알바생에게 어떤 카드 세트가 제일 싼 것이냐고 물었다.
자신도 잘 몰랐는지 그녀는 카드를 한 세트씩 갖다 주면 가격을 찍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7,000원짜리 바이시클 카드 세트를 사고 편의점을 나와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보산역 근처 상권을 유지하게 하는 힘은 바로 근처에 위치한 미군 부대다.
보산역을 중심으로 반경 300m 이내는 거의 모든 시설이 미군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어 상당히 이국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우선 간판에서 한글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수십 개는 될 것 같은 클럽으로부터 꿈의 도시의 밤 하늘로 쿵쿵거리는 자장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쥬시 걸들은 서서히 활동에 들어가려는 건지 하나 둘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찐득한 블루스가 나오는 케밥집들, 한국인의 정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이 진열된 옷집들, 펀 샵(pawn shop)이라고 불리는 중고 상점들, 환전소, 휴대폰 가게 등이 무질서하게 널부러져 있는 모습은 흡사 할렘을 연상시켰다.
비록 한 번도 할렘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그냥 나는 21세기 대한민국형 할렘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근처에서 들를 만한 곳은 없었다.
클럽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령 클럽에 가고 싶다고 해도 내국인 출입 금지 딱지가 붙은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산역을 지나 비교적 차가 많이 다니는 거리로 꺾어서 정처 없이 걸었다.
정도껏 걸었다고 느꼈을 때 건너 편에 ‘호수식당’이 보였다.
속은 든든했으므로 다음에 가보기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점점 밝아옴을 느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매장이 보였다.
조금 뒤에 알게 되지만 우리는 동두천의 구 시가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구 시가지는 말 그대로 구(舊) 시가지였다.
사거리의 신호등은 죄다 노란 불만 깜빡이고 있어 운전자와 운전자, 운전자와 보행자 사이에 적절한 짝짜꿍이 맞지 않으면 사고의 위험 때문에 통행이 힘들 지경이었다.
가게의 수준은 대부분 조악한 편이었고 어느 행사에 쓰였는지 모르겠는 만국기 비슷한 장식이 머리 위에서 공허한 소리를 내며 떨고 있었다.
그나마 그 거리를 뭔가 중심가라고 느끼게 한 것은 부쩍 높아진 인구 밀도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ㅡ 사실 교복을 안 입었다면 거리의 보헤미안이라고 착각했을 그런 끔찍한 녀석들 ㅡ 부터 우리와 마찬가지로 털레털레 걷고 있는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나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걷다가 ‘중앙시장’이라는 곳이 보여 그 방향으로 꺾어 들어갔다.
전형적인 시골의 도시형 시장이었다.
그 때쯤 출출함을 느껴 뭔가 주워먹을 만한 곳을 찾기로 했다.
시장 안에도 이것 저것 먹을 것을 파는 곳이 있었지만 좀 더 은은한 분위기의 장소를 가고 싶어 중앙시장의 주 대로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뭔가 먹자 골목 비슷한 곳이 나타났다.
하지만 대부분 외관이 허름해서 어디든지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다간 시간이 애매해질 상황이었다.
답사대장을 자처한 나는 고민하던 답사대원들을 이끌고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 가게로 무작정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가게는 텅 비어 있었지만 주인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나는 뭔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주머니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다.
그 술집은 우리 같은 20대의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찾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술집 안쪽으로 보이는 텅 빈 널찍한 방들이 그 증거였다.
발간 빛을 내는 조명들도 심상치 않았다.
아주머니가 우리를 바라 보던 그 어색한 눈빛도 그 곳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증거였다.
매우 민망해진 나는 우리가 서울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며 ㅡ 동두천 뉴비 인증과 동시에 우리의 행동에 코딱지만큼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ㅡ 뭐 먹을 만한 곳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냐는 질문을 표면 상으로는 뭐 먹을 만한 것을 파는 곳에서 물어 보는, 마치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먹을 만한 곳을 찾거나 피자 헛에 가서 도미노 피자 매장 위치를 물어 보는,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들도 나름 경황이 없었는지 어떤 답사대원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피가 말라가는 순간이었다.
내 피가 거의 다 증발할 때쯤 아주머니는 인심 좋은, 그러나 여전히 어색한 웃음을 띠면서 친절하게 이 근처는 구 시가지라서 젊은 사람들은 잘 돌아다니지 않고 젊은 사람들은 보통 신 시가지로 놀러 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곳은 택시를 타고 가야 할 거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감사의 말과 함께 쏜살같이 그 음침했던 곳, 영롱한 옥구슬 발이 난무하던 곳을 벗어났다.
아주머니가 우리를 진짜 손님들이라고 착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말이다.
아무래도 주말이 지날 때까지는 계속해서 이런 식의 생활이 계속될 것 같았다.
그 지루함과 심심하게 질린 우리는 일과를 마친 뒤 전날처럼 외출 준비를 하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깜밥집’을 소개해 준 지인이 알려준 또 다른 맛집, 중국집 ‘라이라이’를 가보기로 했다.
라이라이는 깜밥집이 있는 길의 후방부에 위치한 곳인데, 보산역부터의 거리를 따져 보면 대충 300m쯤 될 것이다.
|
내부는 깜밥집과 비슷한 분위기다.
딱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위생이 유지되고 있었다.
나까지 총 5명이 가서 짬뽕밥 2개에 짜장면 2개, 짬뽕 하나를 시켰던 것 같다.
TV를 보면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빈 대접 3개가 나왔다.
짬뽕 국물에 포함된 홍합 껍데기를 놓으라는 용도로 제공되는 것 같았다.
무슨 큰 그릇이 3개씩이나 필요하냐며 그릇 배치를 다시 하고 있을 때 아주머니가 짬뽕을 가져왔다.
우리는 그 무시무시한 짬뽕을 보고서야 왜 짬뽕 하나 당 빈 그릇 한 개를 주는지 알게 되었다.
강남역 근처 술집에서 그만한 짬뽕탕을 시키려면 맛의 훌륭함은 제쳐두고서 그 양만 보더라도 족히 15,000원 돈은 들게 되리라.
홍합은 조심조심 집지 않으면 그 거대한 홍합의 탑이 와르르 무너질 만큼 수북이 쌓여 있었다.
뒤이어 짜장면이 도착했고, 그 양은 보통 중국집 짜장면의 곱빼기는 될 수준이었다.
도저히 음식 위에 올라가 있는 홍합을 먼저 먹지 않으면 국물을 퍼먹을 수가 없을 것 같아 나는 어쩔 수 없이 홍합부터 다 먹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홍합이 어느 정도로 많았냐 하면 내가 홍합을 다 먹고 국물과 다른 건더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쯤 짜장면을 시킨 사람들은 식사를 거의 마쳐가고 있을 정도였다.
평균보다 약간 빠른 속도로 밥을 먹는 내가 가장 늦게 식사를 마친 것 같다.
맛도 훌륭했다.
가격도 몹시 착했다.
내가 먹은 짬뽕밥이, 현금으로 계산하면 ㅡ 카드로 계산하면 음식 값이 약 1,000원에서 1,500원 정도 오른다 ㅡ 4,000원 수준이었다.
동두천의 밥 인심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보산역 근처의 밥집들이 주 고객층인 동네 주민과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카투사를 겨냥한 덕이 크긴 하지만 가성비를 따지자면 이토록 훌륭한 곳은 전국을 찾아봐도 손에 꼽을 수준일 것이다.
볼록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흡족하게 라이라이를 나왔다.
지난 날보다 시간이 훨씬 넉넉했다.
이틀 연속으로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니 길도 어느 정도 낯이 익게 되어 활동 반경을 좀 더 넓혀보기로 했다.
현금도 찾을 겸, 밤에 심심풀이로 할 만한 것도 찾을 겸 보산역 근처에 있는 편의점을 들렀다.
개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편의점이었다.
분명히 배가 매우 부른 상태였을 텐데도 호빵 기계를 보자 달달한 단팥 호빵이 먹고 싶어졌다.
찜기를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맛있는 호빵이 살살 익고 있기는커녕, 찜기엔 전원도 채 안 들어온 상태였다.
실망한 나는 계산대의 알바생을 돌아보며 호빵이 없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놀랍게도 계산대에 서 있던 알바생은 꽤 귀엽장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녀는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일단 알았다고, 괜찮다고, 어쩔 수 없다고 해뒀다.
남자들끼리 모인 밤에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카드 놀이라고 생각해서 트럼프 카드를 사기로 했다.
가판대에 가격표가 제대로 붙어 있지 않은 세 종류의 카드 세트가 구비되어 있었다.
제일 싼 것과 제일 비싼 것의 가격 차가 13,000원이나 나서 나는 알바생에게 어떤 카드 세트가 제일 싼 것이냐고 물었다.
자신도 잘 몰랐는지 그녀는 카드를 한 세트씩 갖다 주면 가격을 찍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7,000원짜리 바이시클 카드 세트를 사고 편의점을 나와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보산역 근처 상권을 유지하게 하는 힘은 바로 근처에 위치한 미군 부대다.
보산역을 중심으로 반경 300m 이내는 거의 모든 시설이 미군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어 상당히 이국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우선 간판에서 한글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수십 개는 될 것 같은 클럽으로부터 꿈의 도시의 밤 하늘로 쿵쿵거리는 자장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쥬시 걸들은 서서히 활동에 들어가려는 건지 하나 둘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찐득한 블루스가 나오는 케밥집들, 한국인의 정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이 진열된 옷집들, 펀 샵(pawn shop)이라고 불리는 중고 상점들, 환전소, 휴대폰 가게 등이 무질서하게 널부러져 있는 모습은 흡사 할렘을 연상시켰다.
비록 한 번도 할렘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그냥 나는 21세기 대한민국형 할렘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근처에서 들를 만한 곳은 없었다.
클럽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령 클럽에 가고 싶다고 해도 내국인 출입 금지 딱지가 붙은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산역을 지나 비교적 차가 많이 다니는 거리로 꺾어서 정처 없이 걸었다.
정도껏 걸었다고 느꼈을 때 건너 편에 ‘호수식당’이 보였다.
속은 든든했으므로 다음에 가보기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점점 밝아옴을 느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매장이 보였다.
조금 뒤에 알게 되지만 우리는 동두천의 구 시가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구 시가지는 말 그대로 구(舊) 시가지였다.
사거리의 신호등은 죄다 노란 불만 깜빡이고 있어 운전자와 운전자, 운전자와 보행자 사이에 적절한 짝짜꿍이 맞지 않으면 사고의 위험 때문에 통행이 힘들 지경이었다.
가게의 수준은 대부분 조악한 편이었고 어느 행사에 쓰였는지 모르겠는 만국기 비슷한 장식이 머리 위에서 공허한 소리를 내며 떨고 있었다.
그나마 그 거리를 뭔가 중심가라고 느끼게 한 것은 부쩍 높아진 인구 밀도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ㅡ 사실 교복을 안 입었다면 거리의 보헤미안이라고 착각했을 그런 끔찍한 녀석들 ㅡ 부터 우리와 마찬가지로 털레털레 걷고 있는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나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걷다가 ‘중앙시장’이라는 곳이 보여 그 방향으로 꺾어 들어갔다.
전형적인 시골의 도시형 시장이었다.
그 때쯤 출출함을 느껴 뭔가 주워먹을 만한 곳을 찾기로 했다.
시장 안에도 이것 저것 먹을 것을 파는 곳이 있었지만 좀 더 은은한 분위기의 장소를 가고 싶어 중앙시장의 주 대로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뭔가 먹자 골목 비슷한 곳이 나타났다.
하지만 대부분 외관이 허름해서 어디든지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다간 시간이 애매해질 상황이었다.
답사대장을 자처한 나는 고민하던 답사대원들을 이끌고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 가게로 무작정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가게는 텅 비어 있었지만 주인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나는 뭔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주머니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다.
그 술집은 우리 같은 20대의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찾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술집 안쪽으로 보이는 텅 빈 널찍한 방들이 그 증거였다.
발간 빛을 내는 조명들도 심상치 않았다.
아주머니가 우리를 바라 보던 그 어색한 눈빛도 그 곳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증거였다.
매우 민망해진 나는 우리가 서울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며 ㅡ 동두천 뉴비 인증과 동시에 우리의 행동에 코딱지만큼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ㅡ 뭐 먹을 만한 곳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냐는 질문을 표면 상으로는 뭐 먹을 만한 것을 파는 곳에서 물어 보는, 마치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먹을 만한 곳을 찾거나 피자 헛에 가서 도미노 피자 매장 위치를 물어 보는,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들도 나름 경황이 없었는지 어떤 답사대원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피가 말라가는 순간이었다.
내 피가 거의 다 증발할 때쯤 아주머니는 인심 좋은, 그러나 여전히 어색한 웃음을 띠면서 친절하게 이 근처는 구 시가지라서 젊은 사람들은 잘 돌아다니지 않고 젊은 사람들은 보통 신 시가지로 놀러 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곳은 택시를 타고 가야 할 거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감사의 말과 함께 쏜살같이 그 음침했던 곳, 영롱한 옥구슬 발이 난무하던 곳을 벗어났다.
아주머니가 우리를 진짜 손님들이라고 착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말이다.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동두천 답사기 7 (1) | 2011.11.24 |
---|---|
나의 동두천 답사기 6 (2) | 2011.11.19 |
나의 동두천 답사기 5 (1) | 2011.11.16 |
나의 동두천 답사기 4 (0) | 2011.11.13 |
나의 동두천 답사기 3 (0) | 2011.11.11 |
나의 동두천 답사기 1 (1) | 2011.11.08 |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2) | 2011.11.07 |
번역의 한계 (0) | 2011.11.04 |
Red Faction : Armageddon (0) | 2011.10.15 |
어느 날 밤 (0) | 2011.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