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6일 수요일의 아침이 밝았다.
전날의 피로가 충분히 가시지 않았다는 느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얼굴을 씻고 이를 닦고 수염을 깎은 뒤 정해진 시각까지 정해진 장소로 출근했다.
예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적당히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간간히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열심히 책을 읽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이었다.
책의 평에서도 밝혔지만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 ㅡ 지금 이렇게 떠올려 봤는데 책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ㅡ 계속해서 읽을 수도 없었다.
일하다 쉬었다 책 읽다 쉬었다를 반복하면서 저녁에 먹을 치킨을 생각했다.
문득 카드의 돈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연락이 가능할 때 어머니께 연락을 드려 돈을 좀 부쳐달라 부탁 드려야 했다.
전 날의 원카드 패배, 그 석연치 않게 넘어갔던 승부에 미련이 남았지만 내 위치가 위치이니 만큼 그 정도의 출혈은 감당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예상보다, 아니 계획보다 일과가 일찍 끝났다.
잽싸게 숙소로 돌아가니 어제의 답사 대원들은 이미 도착해서 쉬고 있었다.
지난 날에 느낀 시간의 압박감을 상기하고 그들을 재촉해 전 날보다 빠른 시각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날씨는 청명했다.
배산임수의 지형이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밤 바람은 온데 간데 없었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보도 블록 곳곳에서 대량 학살된 은행이 고유의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는 점만 빼면 외부 조건은 매우 준수했다.
우선 향한 곳은 전 날에 논의를 마친 대로 편의점이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편의점에 들어섰으나 그 알바생이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일하는 시간대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 날이 아예 일하지 않는 날일 가능성도 있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빈 손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무언가 그녀와의 만남을 안정화하려면 그녀의 근무 일정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편의점에서 나와 우리가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수지의 깐깐징어가 볼 일이 있는 가게였다.
보산역 근처의 다른 여러 가게들과는 달리, 깐깐징어의 제보에 의하면 그 가게에는 젊은 여자 셋이서만 일을 한다고 했다.
마침 우리의 숫자도 셋이었기에
일단 볼 일이 있는 사람만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바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밖에서 쓰윽하고 안을 둘러 봤는데 정말 이색적으로 젊은 여자 셋이서 일을 보고 있었다.
동남아계의 사람이나, 무뚝뚝한 표정의 아저씨들이 있는 가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런 것에 한눈을 판다면 진정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나이라 할 수 없으리라.
거짓말 안 하고 채 10초가 되지 않아 나는 청초한 날씨를 느끼고자 가게에서 시선을 돌렸다.
청산리 벽계수란 이런 나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깐깐징어와 동성로 브라더가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서 서성이며 치킨 나이트 아웃(chicken night out) 계획을 다듬고 있던 도중 우리의 눈을 강하게 끄는 녀석들이 나타났다.
학교를 막 마치고 나온 동두천 현지인 학생들이었다.
그 때 우리가 본 것은 4명의 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우리의 눈을 강하게 끌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꽃미남 수사대’에나 나올 법한 의상과 머리 때문이었다.
도대체가 사람인지, 꼴뚜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라면 돈을 받더라도 입지 않을 만한 그런 코디를, 그들은 퍽이나 자랑스러운 패션의 일부라고 느끼는 듯한 인상이었다.
대학생과 초등학생을 빼고, 교복을 입는 학생들을 굉장히 오랜만에 봤던 건데, 요새는 보통들 저러고 다니는 건지, 아니면 저들이 유별난 건지, 아니면 동두천이라는 지방색이 가미된 건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굉장히 낯선 옷차림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중고등학생에 가하던 각종 전근대적인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그들의 머리 모양, 옷차림 등이 ‘학생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평균과는 너무나 동 떨어진 곳에 있는 꼴뚜기 외계인들이었다.
그들의 개성은 존중하는 바이지만, 도저히 나는 그들을 곱게 바라볼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들은 곧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어제 가기로 했던, 호수식당 건너편의 허름한 치킨 가게로 향했다.
그런데 저쪽에 낯설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처음엔 긴가민가해서 그냥 지나쳤는데 지나치고 보니 그 알바생이었다!
뒤늦게 타겟을 발견한 우리는 우물쭈물하다가 그녀를 시야에서 놓쳤고, 갈팡질팡하다가 일단 그녀를 따라 편의점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고민하던 사이 그녀와의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버리고 말았지만 꿋꿋이 걸었다.
근데 막상 편의점에 도착했더니 그녀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냈고 일단은 후퇴다 싶어 다시 빈 손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아, 때마침 창고 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그녀.
하지만 이런 식으로 타이밍을 놓쳐서야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는 그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치킨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문득 누군가 ㅡ 나는 아니다 ㅡ 제안했다.
기왕 이렇게 나온 김에 신 시가지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왜 그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지 참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택시를 잡았다.
나는 자못 당당한 목소리로 ‘신 시가지 가주세요!’하고 부탁했다.
운전은 상당히 거친 편이었다.
편도 2차선 도로에서 추월을 난무하더니, 차도를 따라 우회전하지 않고 주유소를 가로질러가는 경로를 택하기도 했다.
전혀 ‘신 시가지’로 향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따라 10분여간 택시를 탔다.
택시는 아파트 촌으로 접어들었다.
동두천에 이렇게 아파트가 많았는지 처음 알았다.
이번에는 정해진 차도를 따라 우회전을 했다.
갑자기 시야가 뻥 뚫리더니 왕복 8차선은 됨직한 도로가 나타났다.
사방에 상점이 널려 있었고, 그 수의 10배는 넘는 사람들이 각자 갈 길을 가고, 볼 일을 보고 있었다.
드디어 동두천의 신 시가지에 도달했다.
꼭 디아블로 2에서 액트를 넘길 때의 그 감동 비슷한 감정이 몰려왔다.
전형적인 신도시의 도심이었다.
동두천의 신도심은 서울 강북 지역의 여러 도심들 ㅡ 신촌, 홍대, 종로 등 ㅡ 이 별 계획 없이 건물들이 하나 둘 지어지며 다소 뒤죽박죽의 모습의 상권으로 형성된 것과는 달리, 강남역과 압구정, 신논현 등을 비롯해 분당, 일산 등의 비교적 신도시들처럼 어느 정도 획일화된 전문적인 상가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체인점 위주의 상점이 들어선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방면의 낯이 익은 체인점들이 눈에 띄었다.
고담의 히어로가 나이키 매장이 있으면 짚업 후드를 하나 사고 싶다고 했는데 일단은 저녁부터 먹고 보기로 했다.
골목길을 조금 헤치고, 대개 이런 곳의 골목은 헤친다는 표현이 부적절하기는 하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오븐에 빠진 닭’이 나타났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최근에 생긴 치킨 체인점 중 가장 높게 평가하는 오빠닭으로 직행했다.
손님은 별로 없었다.
TV에서는 한국 시리즈 2차전이 막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늘향 치킨을 반반으로 시켰다.
오븐을 직접 만들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제야 닭 모가지를 비틀고 있는 건지 치킨이 우리의 식탁에 등장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치킨을 기다리면서 알아 보니 동두천 전체를 통틀어 나이키 매장은 전 날에 봤던 구 시가지 매장이 전부였다.
쇼핑은 포기하기로 했다.
치킨이 나왔다.
기대에 걸맞게 오빠닭의 치킨은 훌륭했다.
약속대로 내가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데…….
전날의 피로가 충분히 가시지 않았다는 느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얼굴을 씻고 이를 닦고 수염을 깎은 뒤 정해진 시각까지 정해진 장소로 출근했다.
예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적당히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간간히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열심히 책을 읽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이었다.
책의 평에서도 밝혔지만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 ㅡ 지금 이렇게 떠올려 봤는데 책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ㅡ 계속해서 읽을 수도 없었다.
일하다 쉬었다 책 읽다 쉬었다를 반복하면서 저녁에 먹을 치킨을 생각했다.
문득 카드의 돈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연락이 가능할 때 어머니께 연락을 드려 돈을 좀 부쳐달라 부탁 드려야 했다.
전 날의 원카드 패배, 그 석연치 않게 넘어갔던 승부에 미련이 남았지만 내 위치가 위치이니 만큼 그 정도의 출혈은 감당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예상보다, 아니 계획보다 일과가 일찍 끝났다.
잽싸게 숙소로 돌아가니 어제의 답사 대원들은 이미 도착해서 쉬고 있었다.
지난 날에 느낀 시간의 압박감을 상기하고 그들을 재촉해 전 날보다 빠른 시각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날씨는 청명했다.
배산임수의 지형이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밤 바람은 온데 간데 없었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보도 블록 곳곳에서 대량 학살된 은행이 고유의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는 점만 빼면 외부 조건은 매우 준수했다.
우선 향한 곳은 전 날에 논의를 마친 대로 편의점이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편의점에 들어섰으나 그 알바생이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일하는 시간대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 날이 아예 일하지 않는 날일 가능성도 있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빈 손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무언가 그녀와의 만남을 안정화하려면 그녀의 근무 일정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편의점에서 나와 우리가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수지의 깐깐징어가 볼 일이 있는 가게였다.
보산역 근처의 다른 여러 가게들과는 달리, 깐깐징어의 제보에 의하면 그 가게에는 젊은 여자 셋이서만 일을 한다고 했다.
일단 볼 일이 있는 사람만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바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밖에서 쓰윽하고 안을 둘러 봤는데 정말 이색적으로 젊은 여자 셋이서 일을 보고 있었다.
동남아계의 사람이나, 무뚝뚝한 표정의 아저씨들이 있는 가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런 것에 한눈을 판다면 진정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나이라 할 수 없으리라.
거짓말 안 하고 채 10초가 되지 않아 나는 청초한 날씨를 느끼고자 가게에서 시선을 돌렸다.
청산리 벽계수란 이런 나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깐깐징어와 동성로 브라더가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서 서성이며 치킨 나이트 아웃(chicken night out) 계획을 다듬고 있던 도중 우리의 눈을 강하게 끄는 녀석들이 나타났다.
학교를 막 마치고 나온 동두천 현지인 학생들이었다.
그 때 우리가 본 것은 4명의 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우리의 눈을 강하게 끌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꽃미남 수사대’에나 나올 법한 의상과 머리 때문이었다.
도대체가 사람인지, 꼴뚜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라면 돈을 받더라도 입지 않을 만한 그런 코디를, 그들은 퍽이나 자랑스러운 패션의 일부라고 느끼는 듯한 인상이었다.
대학생과 초등학생을 빼고, 교복을 입는 학생들을 굉장히 오랜만에 봤던 건데, 요새는 보통들 저러고 다니는 건지, 아니면 저들이 유별난 건지, 아니면 동두천이라는 지방색이 가미된 건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굉장히 낯선 옷차림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중고등학생에 가하던 각종 전근대적인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그들의 머리 모양, 옷차림 등이 ‘학생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평균과는 너무나 동 떨어진 곳에 있는 꼴뚜기 외계인들이었다.
그들의 개성은 존중하는 바이지만, 도저히 나는 그들을 곱게 바라볼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들은 곧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어제 가기로 했던, 호수식당 건너편의 허름한 치킨 가게로 향했다.
http://kwangaeto.egloos.com/6243140
그런데 저쪽에 낯설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처음엔 긴가민가해서 그냥 지나쳤는데 지나치고 보니 그 알바생이었다!
뒤늦게 타겟을 발견한 우리는 우물쭈물하다가 그녀를 시야에서 놓쳤고, 갈팡질팡하다가 일단 그녀를 따라 편의점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고민하던 사이 그녀와의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버리고 말았지만 꿋꿋이 걸었다.
근데 막상 편의점에 도착했더니 그녀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냈고 일단은 후퇴다 싶어 다시 빈 손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아, 때마침 창고 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그녀.
하지만 이런 식으로 타이밍을 놓쳐서야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는 그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치킨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문득 누군가 ㅡ 나는 아니다 ㅡ 제안했다.
기왕 이렇게 나온 김에 신 시가지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왜 그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지 참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택시를 잡았다.
나는 자못 당당한 목소리로 ‘신 시가지 가주세요!’하고 부탁했다.
운전은 상당히 거친 편이었다.
편도 2차선 도로에서 추월을 난무하더니, 차도를 따라 우회전하지 않고 주유소를 가로질러가는 경로를 택하기도 했다.
전혀 ‘신 시가지’로 향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따라 10분여간 택시를 탔다.
택시는 아파트 촌으로 접어들었다.
동두천에 이렇게 아파트가 많았는지 처음 알았다.
이번에는 정해진 차도를 따라 우회전을 했다.
갑자기 시야가 뻥 뚫리더니 왕복 8차선은 됨직한 도로가 나타났다.
사방에 상점이 널려 있었고, 그 수의 10배는 넘는 사람들이 각자 갈 길을 가고, 볼 일을 보고 있었다.
드디어 동두천의 신 시가지에 도달했다.
꼭 디아블로 2에서 액트를 넘길 때의 그 감동 비슷한 감정이 몰려왔다.
전형적인 신도시의 도심이었다.
동두천의 신도심은 서울 강북 지역의 여러 도심들 ㅡ 신촌, 홍대, 종로 등 ㅡ 이 별 계획 없이 건물들이 하나 둘 지어지며 다소 뒤죽박죽의 모습의 상권으로 형성된 것과는 달리, 강남역과 압구정, 신논현 등을 비롯해 분당, 일산 등의 비교적 신도시들처럼 어느 정도 획일화된 전문적인 상가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체인점 위주의 상점이 들어선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방면의 낯이 익은 체인점들이 눈에 띄었다.
고담의 히어로가 나이키 매장이 있으면 짚업 후드를 하나 사고 싶다고 했는데 일단은 저녁부터 먹고 보기로 했다.
골목길을 조금 헤치고, 대개 이런 곳의 골목은 헤친다는 표현이 부적절하기는 하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오븐에 빠진 닭’이 나타났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최근에 생긴 치킨 체인점 중 가장 높게 평가하는 오빠닭으로 직행했다.
손님은 별로 없었다.
TV에서는 한국 시리즈 2차전이 막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늘향 치킨을 반반으로 시켰다.
오븐을 직접 만들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제야 닭 모가지를 비틀고 있는 건지 치킨이 우리의 식탁에 등장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치킨을 기다리면서 알아 보니 동두천 전체를 통틀어 나이키 매장은 전 날에 봤던 구 시가지 매장이 전부였다.
쇼핑은 포기하기로 했다.
치킨이 나왔다.
기대에 걸맞게 오빠닭의 치킨은 훌륭했다.
약속대로 내가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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