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8일, 금요일이 되었다.
동두천에서 보낸 날도 일수로 5일째, 꽉꽉 채워서는 4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금요일의 일상도 지난 4일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고 정해진 시각까지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서 정해진 시각까지 일을 하고 예정된 시각 즈음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시각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것은 참 기가 막힌 일이다.
언제부터 인류는 시각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인류가 울타리를 세우면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루소의 말이 타당하다면, 시각을 정한 시점부터 인류의 사고 방식이 달라졌고 생활상이 달라졌으며 문화의 발전 양상이 달라졌다는 설명도 가능하지 않을까.
공간적인 개념에 구분을 짓는 울타리라는 경계가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시간의 영역을 나누는 시각이라는 경계도 우리가 잘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암묵적인 알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을까.
각설하고, 금요일 저녁은 동두천에 있던 우리 일행이 다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지난 4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외출을 했기 때문에 체력면이나 금전면이나 다소 후달리는 상황이었지만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시간을 그냥 보내 버리기엔 좀이 쑤셨다.
지난 날의 만남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수지의 봉사(奉仕) 사내를 꼬드겼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려하지 않았다.
지난 날의 만남이 있게 된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구의 스트라이커도 숙소에서 쉰다고 했다.
배알이 비틀린 나는 혼자서,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보산역 근처를 좀 걷기로 했다.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아쉽게도, 이런 저런 활동에 제약이 있는 내가 갈 곳은 편의점뿐이었다.
저녁은 이미 먹었으므로 동두천의 푸짐한 밥 인심을 재차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었고, 술도 어차피 못 먹는 상황이었지만 혼자서 술집에 들어갈 기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슨 옷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요 ㅡ 사실 옷 가게야 있었지만 보산역 근처의 옷 가게는 쥬시 걸과 미군 사내, 딱 두 부류의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곳들이라 내가 둘러보고 다닐 그럴 성격의 가게는 하나도 없다 ㅡ 구경할 만한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요, 마땅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단팥 호빵을 하나 꺼내 달라고 했다.
그 날은 기초 화장조차 하지 않은 레알 민낯의 그녀가 호빵은 원래 셀프라고 했다.
앗차, 하며 봉지에 조심스럽게 단팥 호빵을 담아 계산하고 나왔다.
빠르게 식어가는 호빵을 오물오물 씹으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가끔씩 제3의 눈을 갖는 수지의 천진반이 내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는지 같이 나가자고 했다.
나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우리 둘은 보산역 근처를 배회하다 들어왔다.
그것이 동두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보낸 마지막 밤이었다.
다음 날인 10월 29일 토요일엔 일과를 마치고 짧은 짬이 나서 서울을 1박으로 다녀왔다.
30일 일요일부터는 정기적으로 밤 근무를 서야 했다.
정오 무렵 동두천에 돌아와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첫 밤 근무를 섰다.
10월의 마지막 날엔 저녁으로 깜밥집에 가서 계란말이는 안 나오는 부대찌개 백반을 먹었다.
그리고 근무를 섰다.
11월의 첫 날 저녁에도 깜밥집을 갔고, 계란말이는 안 나오는 닭볶음탕 ㅡ 볶음이라고 하기엔 국물이 꽤나 많았는데 이게 동두천 스타일인가 ㅡ 을 먹었다.
그나마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깜밥집에 가기 전, 미리 전화를 걸어 주 메뉴를 확인했다는 것 정도다.
그 후 근무를 섰다.
11월 2일에는 아무래도 좀이 쑤셔 혼자나마 일상을 깼다.
편의점의 그녀가 추천한 '진미옥 설렁탕'이라는 곳을 가보기로 한 것이다.
혼자 진미옥을 향해 출발하기 전 지도를 몇 번씩 확인했다.
위치는 구 시내 근처로 충분히 걸을 만한 위치였다.
그러나 막상 그 근처에 다다라서는 길을 잃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생각했던 위치에 설렁탕 집이 없었다.
길이라도 물어보려고 했으나 거리엔 마땅히 길을 물어볼 만한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가까스로 두 번의 질문 끝에 진미옥을 찾았다.
거의 35분이나 걸렸다.
동두천을 대표하는 맛집답게 손님이 꽤 있었다.
메뉴는 기본적인 설렁탕에 안주류가 있었는데 기본 설렁탕(6000원)을 제외하고는 가격이 특별히 싸지도 비싸지도 않았다.
설렁탕을 시키자 짐을 풀어놓기가 무섭게 보글보글 끓는 도가니가 식탁에 등장했다.
가격에 비해 꽤 훌륭한 맛이었다.
고기의 질도 괜찮았고 설렁탕의 단짝인 깍두기도 맛있었다.
찾는 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그 노력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돌아가는 길엔 손쉽게, 예전에 길 내기를 하던 그 천변도로를 찾아 약 10~15분만에 보산역 근처로 돌아왔다.
11월 3일부터 2박 동안은 근무가 없는 날이었다.
내침 김에 도시의 공기로 기분을 정화하자고 마음 먹었다.
서울로 떠나기 전, 그 때까지 가보지 않은 동두천 최후의 맛집, 호수식당을 뚫기로 했다.
외관은 여타 부대찌개 집과 다른 바가 없었다.
동두천에는 수많은 부대찌개 집들이 있고, 죄다 간판에 '원조'라는 두 글자를 적어두기 때문이다.
식당 안을 들어가도 뭔가 눈에 띌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서 부대찌개 3인분을 시켰다.
처음에 냄비에 담겨 나온 부대찌개를 보고는 왠지 실망했다.
별로 양이 많은 것 같지도 않았고, 외관상 별로 맛있어보이지도 않았으며 기본으로 깔린 반찬도 깜밥집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가격은 1인분에 6천원이었고 사리까지 돈을 추가로 받으니 우리가 여태까지 익숙해져 있던 동두천의 다른 밥집들보다는 더 비싼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근데 막상 찌개를 보글보글 끓인 후에 한 숟가락 떠서 먹어보니, 매우 맛이 있었다.
육수 맛이 맵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담백했고 무엇보다 소세지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든 소세지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맛있었다.
처음에는 적어보였던 양도 먹다보니 역시나 동두천답게 넉넉했다.
아, 이 정도라면 충분히 맛집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나중에 나와 같이 근무했던 미국인에게 이 집을 추천해주었다.
한국인 부인을 둔 그 사람은 장인 어른과 장모님이 동두천에 파견나온 자신을 위해 잠시 놀러온다고 하며 내게 동두천에 괜찮은 부대찌개 집을 물었고 나는 주저없이 ㅡ 사실 이 외의 다른 부대찌개 집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선택권이 없기도 했다 ㅡ 호수식당을 추천했다.
미국인의 평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매운 것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입맛에도 국물 맛이 쏙 맞았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었던 것 같다.
호수식당에서 나와 바로 보산역으로 가서 서울로 내려가는 지하철을 탔다.
소요산에서 동두천을 통해 서울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은 저녁 시간에는 한 시간에 3대쯤밖에 운행되지 않기 때문에 조금 기다려야 했다.
플랫폼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구조였어서 꽤나 추웠다.
겨울이 코 앞에 다가왔다는 증거이리라.
지하철을 타고 잘 서울을 가는 중이었다.
서아시아 계열의 외국인이 지하철에 탔는데 분명히 눈치가 무언가 길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 자리에 앉는 것이 분명히 내게 길을 물어볼 모양이었다.
툭툭.
"소울욕 가료묜 오또케 해야돼요?"
문제는 내가 서울역에 가기 전인 종로3가역에서 내릴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내 상황을 밝혔으나 '소울욕'이라고 하는 외국인이 나의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영어로 설명하면 혹시나 알아들을까 싶어서 영어로도 말해봤으나 내가 '나는 서울역에 가기 전에 내려야 한다.'고 했던 말 중에서 그가 알아차린 말은 '서울 스테이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도 그와 같이 서울역에 가주기로 했다.
서울역에 도착했고 나는 그에게 여기가 서울역이니 내리면 된다고 알려주고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 외국인은 평생동안 내가 자신을 위해 어떤 것을 포기했는지, 물론 아주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모르겠지.
2박 3일을 잘 쉬고 토요일인 2011년 11월 5일에 다시 동두천에 복귀했다.
동두천에서 보낸 날도 일수로 5일째, 꽉꽉 채워서는 4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금요일의 일상도 지난 4일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고 정해진 시각까지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서 정해진 시각까지 일을 하고 예정된 시각 즈음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시각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것은 참 기가 막힌 일이다.
언제부터 인류는 시각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인류가 울타리를 세우면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루소의 말이 타당하다면, 시각을 정한 시점부터 인류의 사고 방식이 달라졌고 생활상이 달라졌으며 문화의 발전 양상이 달라졌다는 설명도 가능하지 않을까.
공간적인 개념에 구분을 짓는 울타리라는 경계가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시간의 영역을 나누는 시각이라는 경계도 우리가 잘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암묵적인 알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을까.
각설하고, 금요일 저녁은 동두천에 있던 우리 일행이 다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지난 4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외출을 했기 때문에 체력면이나 금전면이나 다소 후달리는 상황이었지만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시간을 그냥 보내 버리기엔 좀이 쑤셨다.
지난 날의 만남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수지의 봉사(奉仕) 사내를 꼬드겼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려하지 않았다.
지난 날의 만남이 있게 된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구의 스트라이커도 숙소에서 쉰다고 했다.
배알이 비틀린 나는 혼자서,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보산역 근처를 좀 걷기로 했다.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일단 옷 입기 전에 양말부터…….
아쉽게도, 이런 저런 활동에 제약이 있는 내가 갈 곳은 편의점뿐이었다.
저녁은 이미 먹었으므로 동두천의 푸짐한 밥 인심을 재차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었고, 술도 어차피 못 먹는 상황이었지만 혼자서 술집에 들어갈 기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슨 옷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요 ㅡ 사실 옷 가게야 있었지만 보산역 근처의 옷 가게는 쥬시 걸과 미군 사내, 딱 두 부류의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곳들이라 내가 둘러보고 다닐 그럴 성격의 가게는 하나도 없다 ㅡ 구경할 만한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요, 마땅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단팥 호빵을 하나 꺼내 달라고 했다.
그 날은 기초 화장조차 하지 않은 레알 민낯의 그녀가 호빵은 원래 셀프라고 했다.
앗차, 하며 봉지에 조심스럽게 단팥 호빵을 담아 계산하고 나왔다.
빠르게 식어가는 호빵을 오물오물 씹으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가끔씩 제3의 눈을 갖는 수지의 천진반이 내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는지 같이 나가자고 했다.
나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우리 둘은 보산역 근처를 배회하다 들어왔다.
그것이 동두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보낸 마지막 밤이었다.
다음 날인 10월 29일 토요일엔 일과를 마치고 짧은 짬이 나서 서울을 1박으로 다녀왔다.
30일 일요일부터는 정기적으로 밤 근무를 서야 했다.
정오 무렵 동두천에 돌아와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첫 밤 근무를 섰다.
10월의 마지막 날엔 저녁으로 깜밥집에 가서 계란말이는 안 나오는 부대찌개 백반을 먹었다.
그리고 근무를 섰다.
11월의 첫 날 저녁에도 깜밥집을 갔고, 계란말이는 안 나오는 닭볶음탕 ㅡ 볶음이라고 하기엔 국물이 꽤나 많았는데 이게 동두천 스타일인가 ㅡ 을 먹었다.
그나마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깜밥집에 가기 전, 미리 전화를 걸어 주 메뉴를 확인했다는 것 정도다.
그 후 근무를 섰다.
11월 2일에는 아무래도 좀이 쑤셔 혼자나마 일상을 깼다.
편의점의 그녀가 추천한 '진미옥 설렁탕'이라는 곳을 가보기로 한 것이다.
혼자 진미옥을 향해 출발하기 전 지도를 몇 번씩 확인했다.
위치는 구 시내 근처로 충분히 걸을 만한 위치였다.
그러나 막상 그 근처에 다다라서는 길을 잃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생각했던 위치에 설렁탕 집이 없었다.
길이라도 물어보려고 했으나 거리엔 마땅히 길을 물어볼 만한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가까스로 두 번의 질문 끝에 진미옥을 찾았다.
거의 35분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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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을 대표하는 맛집답게 손님이 꽤 있었다.
메뉴는 기본적인 설렁탕에 안주류가 있었는데 기본 설렁탕(6000원)을 제외하고는 가격이 특별히 싸지도 비싸지도 않았다.
설렁탕을 시키자 짐을 풀어놓기가 무섭게 보글보글 끓는 도가니가 식탁에 등장했다.
가격에 비해 꽤 훌륭한 맛이었다.
고기의 질도 괜찮았고 설렁탕의 단짝인 깍두기도 맛있었다.
찾는 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그 노력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돌아가는 길엔 손쉽게, 예전에 길 내기를 하던 그 천변도로를 찾아 약 10~15분만에 보산역 근처로 돌아왔다.
11월 3일부터 2박 동안은 근무가 없는 날이었다.
내침 김에 도시의 공기로 기분을 정화하자고 마음 먹었다.
서울로 떠나기 전, 그 때까지 가보지 않은 동두천 최후의 맛집, 호수식당을 뚫기로 했다.
외관은 여타 부대찌개 집과 다른 바가 없었다.
동두천에는 수많은 부대찌개 집들이 있고, 죄다 간판에 '원조'라는 두 글자를 적어두기 때문이다.
식당 안을 들어가도 뭔가 눈에 띌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서 부대찌개 3인분을 시켰다.
처음에 냄비에 담겨 나온 부대찌개를 보고는 왠지 실망했다.
별로 양이 많은 것 같지도 않았고, 외관상 별로 맛있어보이지도 않았으며 기본으로 깔린 반찬도 깜밥집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가격은 1인분에 6천원이었고 사리까지 돈을 추가로 받으니 우리가 여태까지 익숙해져 있던 동두천의 다른 밥집들보다는 더 비싼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근데 막상 찌개를 보글보글 끓인 후에 한 숟가락 떠서 먹어보니, 매우 맛이 있었다.
육수 맛이 맵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담백했고 무엇보다 소세지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든 소세지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맛있었다.
처음에는 적어보였던 양도 먹다보니 역시나 동두천답게 넉넉했다.
아, 이 정도라면 충분히 맛집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나중에 나와 같이 근무했던 미국인에게 이 집을 추천해주었다.
한국인 부인을 둔 그 사람은 장인 어른과 장모님이 동두천에 파견나온 자신을 위해 잠시 놀러온다고 하며 내게 동두천에 괜찮은 부대찌개 집을 물었고 나는 주저없이 ㅡ 사실 이 외의 다른 부대찌개 집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선택권이 없기도 했다 ㅡ 호수식당을 추천했다.
미국인의 평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매운 것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입맛에도 국물 맛이 쏙 맞았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었던 것 같다.
호수식당에서 나와 바로 보산역으로 가서 서울로 내려가는 지하철을 탔다.
소요산에서 동두천을 통해 서울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은 저녁 시간에는 한 시간에 3대쯤밖에 운행되지 않기 때문에 조금 기다려야 했다.
플랫폼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구조였어서 꽤나 추웠다.
겨울이 코 앞에 다가왔다는 증거이리라.
지하철을 타고 잘 서울을 가는 중이었다.
서아시아 계열의 외국인이 지하철에 탔는데 분명히 눈치가 무언가 길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 자리에 앉는 것이 분명히 내게 길을 물어볼 모양이었다.
툭툭.
"소울욕 가료묜 오또케 해야돼요?"
문제는 내가 서울역에 가기 전인 종로3가역에서 내릴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내 상황을 밝혔으나 '소울욕'이라고 하는 외국인이 나의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영어로 설명하면 혹시나 알아들을까 싶어서 영어로도 말해봤으나 내가 '나는 서울역에 가기 전에 내려야 한다.'고 했던 말 중에서 그가 알아차린 말은 '서울 스테이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도 그와 같이 서울역에 가주기로 했다.
서울역에 도착했고 나는 그에게 여기가 서울역이니 내리면 된다고 알려주고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 외국인은 평생동안 내가 자신을 위해 어떤 것을 포기했는지, 물론 아주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모르겠지.
2박 3일을 잘 쉬고 토요일인 2011년 11월 5일에 다시 동두천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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