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유명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볼 때만 해도 여태까지 나온 어벤저스 관련 마블 코믹스 영화 중 제대로 봤던 것이 《아이언맨》과 《아이언맨 2》 정도가 전부였다. 사실 《아이언맨 3》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간 어느 지점부터 끝까지 보기는 했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어벤저스들의 이야기는 상식이나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것 이상으로는 알지 못했고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영화를 그저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당시(2015년 5월 초)만 해도 제일 볼 만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어차피 내 현금 내가면서 본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1
《아이언맨 3》에서 이미 낌새를 차리긴 했지만 이미 이 어벤저스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사실 원작 만화도 정도에 있어서는 비슷하겠지만) 이미 현실성 같은 건 산으로 간 지 오래되었다. 이야기의 흐름을 봤을 때 이미 이 전편에서 외계인들이 맨해튼 상공에 웜홀을 뚫고 지구를 침략하지를 않나, 무슨 온 우주의 생명체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에너지 물질 같은 것이 있질 않나, AI가 우주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과 결합해 어떤 하나의 개체(생물체라기보단 사이보그나 어떤 면에선 순수한 알고리즘 그 자체에 가까운 어떤 그 대상)로 완성되지를 않나 일말의 양심(?)을 가지고 영화에 임한 나 같은 순둥이에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전개가 이어졌더랬다.
하지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올바른 법이다. 이상한 펩시맨처럼 생긴 녀석이 울트론인지, 비전인지가 되어 나타나는 순간 나는 그 길로 영화관을 떠나기보다는 마음가짐을 고쳐먹었다. 이 영화를 만화 원작의 상당히 비싸고 공들인 실사판 특촬물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어떤 예술품을 감상할 때 최소한 고려할 만한 것들, 예를 들어 작품의 거대한 세계관이나 주요 인물들의 신념, 줄거리를 관통하는 하나의 교훈, 이야기 속에 숨겨진 기호나 의도된 복선 등을 파악하려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다른 시공간 속의 등장 인물들이 어떤 위대한 원작을 기반으로 하고 있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라는 작품은 그냥 때리고 부수고 쫓고 도망가고 피융 탕탕탕 으악 철푸덕하는 것만을 보라고 아주 노골적으로 외치고 있는 영화다. 혹자는 뭐 제국주의다, 어설픈 휴머니즘으로의 포장이다, 녹색 인간과 인류 최고의 여성(배우로서의 이야기다.)과의 로맨스가 얄팍하네, 스토리를 너무 많이 끼워넣으려고 하다가 영화 전체가 어수선해졌다 같은 비평과 비난을 쏟아부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 사람들이야말로 이 영화를 오독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아주 원초적이고 단순한 시청각적 레저를 제공할 뿐이다. 레저 상품의 취향이 본인과 맞지 않아 좀 투덜거릴 수는 있는 것이지만 그 투덜거림이 시대정신에 대한 거룩한 일갈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벤저스의 세계 속에서 전쟁은 하나의 일상이고, 전투는 ㅡ 그렇게나 강력한 첨단 무기 속에서 방패와 망치와 활이(심지어 헐크는 맨손으로 싸운다.) 이루어내는 성취라니 이 얼마나 컬트적인 광경이란 말인가 ㅡ 그 일상 속의 자그마한 일탈인 것이다. 무언가를 탐하는 자들도, 그것을 막으려는 자들도 대단한 이유가 없다. 그저 열심히 서로와 서로를 맞붙이는 어떤 작품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팬시하게 생긴, 아주 예쁘게 생긴 유니폼과 수트를 입은 우리의 주인공들은 참 잘도 싸운다. 그렇게 심난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 농담을 던지고 반목을 하다가도 서로 돕고 하나로 뭉쳐 대단하지 않은 그들만의 목표를 달성한다. 서울도 나온다. 예쁜 한국 사람도 나온다. 이 영화에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나.
- 표기법상 "어벤저스"라고 쓰는 것이 맞지만 공식 발표된 한글 제목을 따라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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